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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이름의 타인들과 공존하기, <좋지 아니한가> 첫 공개
김혜리 2007-02-21

일시 2월21일 장소 용산CGV

이 영화 고등학교 교사 심창수씨네 식구들은 제각기 권태와 시름에 잠겨있다. 아버지 창수(천호진)는 교직의 보람을 잃고 심인성 발기불능 상태에 빠져 있고, 욕구불만인 아내 희경(문희경)은 도통 사는 재미를 찾을 수 없어 우울하다. 무명 무협작가인 희경의 동생 미경(김혜수)은 늘어난 츄리닝 바람으로 실연 후유증을 곱씹는 중. 아들 용태(유아인)는 출생의 비밀을 번민하는 한편 짝사랑하는 가난한 소녀 하은(정유미)의 원조교제를 말리느라 바쁘고 딸 용선은 괴짜 임시교사 경호(박해일)에게 풋사랑을 느낀다. 식사 때를 제외하면 소 닭 보듯 하던 식구들은, 창수가 원조교제 누명을 쓰면서 공동의 고민거리를 만난다.

100자평 장편 <말아톤> <잠수왕 무하마드>(인권 옴니버스 영화 <세번째 시선> 중)에서 다른 존재를 긍정하고 더불어 사는 법을 이야기했던 정윤철 감독은 <좋지 아니한가>에서 처음부터 동질적 집단이라고 규정된 타인들-가족과 즐겁게 어울려 사는 법을 궁리한다. 영화의 결론은 “혼자가 아니라서, 좋지 아니한가?”라는 것. 다만 행복한 동행의 조건은 지나치게 끌어당기거나 밀어내지 않는 달과 지구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다소 관념이 앞서지만 시큰둥한 정서를 바닥에 깐 유머가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부부로 분한 천호진, 문희경의 안정적 연기도 돋보인다. 절정부에는 <박치기!>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천변 패싸움이 등장한다.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를 접시 돌리듯 빠른 편집으로 이어가며 이야기꾼으로서 기량을 연마하는 감독의 모습이 보인다. 김혜리/ <씨네21>편집위원

감독의 전작 <말아톤>의 완성도와 쟁쟁한 연기자들의 출연으로 인한 기대치를 감안한다면, 참 '좋지 아니한'영화이다. 느슨한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썰렁한 유머, 그것을 관통하는 심드렁한 태도, 그리고 우여곡절 끝의 가족의 화해 등의 취지는 공감할 만하다. 문제는 디테일인데 영화는 전혀 구체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 아버지를 제외한 인물들의 현실적 느낌이 전혀 살아나지 않는다. 모두 '엉뚱한 루저'라는 표면상의 외피를 이리저리 조합한 결과 탄생한 지극히 피상적인 인물이라는 인상을 떨칠 수 없다. (게다가 인물들에 대한 감독의 애정도 살갑지 못하다. 특히 정유미 캐릭터는 중반이후 무의미하게 버려진다.) 일본 괴짜 가족 코미디가 연상되기도 하지만, 에피소드가 신선하거나 독특하지 않기 때문에, 진부한 이야기를 굉장히 신선한 양 내놓으면서 짐짓 무표정을 가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갈등이 고조되고 풀리는 극의 흐름은 더욱 엉성하다. 이런 불만들은 <올드미스 다이어리>나 <가족의 탄생>과 비교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올드미스 다이어리> 처럼 캐릭터가 구체적이고 사실적일 때 웃음도 감동도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영화를 통해 전달되는 윤리가 <가족의 탄생>처럼 진보적일 때 영화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감독은 '루저'에 대해 단단히 오해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들은 멍한 상태로 관념적인 말들이나 내뱉는 달관한 자들이 아니다. 나름대로 구체적이고 치열한 고민을 하는데, 그 고민들이 남들과 소통이 잘 안되고 '루저'로 보이는 것뿐이다. 늘어진 추리닝 입고 엉덩이를 긁는다고 무협작가 노처녀 캐릭터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요, 비디오 테이프 쌓아놓고 미스테리 운운한다고 영화과 출신 반백수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청소년 아들 딸 들도 달뜬 표정으로 아무 생각 없이 살지는 않는다는 것을 부디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황진미/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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