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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아니한가> 정윤철 감독 인터뷰
김현정 사진 이혜정 2007-03-01

“캐릭터 위주의 영화다, 그림으로 치면 인상주의라고 할까”

-<말아톤> 이후 연출제의를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뜻밖에도 작고 독특한 영화를 두 번째 작품으로 택했다. =<괴물2>를 비롯하여(웃음) 시나리오가 많이 들어오기는 했다(봉준호 감독이 대종상 시상식에서 정윤철 감독이 <괴물2>를 연출할 거라고 농담한 사건을 말함). <말아톤>보다는 더 큰 영화를 해야 할 것 같았고, 원래 SF영화를 좋아해서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지 싶기도 했다. (웃음) 그런데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다. 워낙 작은 이야기여서 제작에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생각해보면 지금 한국 영화계엔 이런 영화가 필요하지 않은가. 규모는 자꾸 커지고 양극화되어 중간 규모 영화가 설 자리가 없다. <좋지 아니한가>는 캐릭터 위주의 영화다. 기술과 규모야 할리우드보다 못하겠지만 캐릭터는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 할리우드보다 못할 것이 없다.

-<좋지 아니한가>는 캐릭터가 중요한 영화이다보니 다섯 가족에게 닥치는 사건이 제각각이다. 연출에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 =드라마가 없다보니 예고편 만드는 게 고민이긴 했지만 이 영화가 주는 재미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삶의 에너지, 그들 사이의 관계가 주는 긴장감에 있다. 그래서 꽉 짜여진 설계도보다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려고 했다. 그림으로 치자면 인상주의에 가깝다고나 할까. <나폴레옹의 대관식> <최후의 만찬> 같은 그림은 강렬한 드라마를 담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인상주의 그림이 등장하면서 그저 해바라기만을 그려놓은 것이다. 고흐의 <해바라기>는 사물을 그렸을 뿐이지만 그 사물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강렬하고 마음과 감성으로 전하는 파장이 엄청나다. 캐릭터가 드러나는 영화는 그런 그림과 비슷하다. 연출하면서 어려움을 겪기는 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다섯 식구 이야기이다보니 신에서 신으로 넘어가는 브릿지가 없이 전부 따로 논다는 점이었다. 이 영화는 웃기는 장면이 많은데 그게 편집을 해서 감정이 충돌해야 웃기는 장면이다. 그래서 촬영하면서는 정말 엄숙했다. (웃음) 다행히 편집을 마치고 영화를 보았더니 콘트라스트가 드러나고 끊기듯이 넘어가는 느낌도 좋고 웃기기도 했다. 어수선하고 코믹한 드라마 와중에 진지한 감정을 담아야 했던 것도 균형잡기가 어려웠던 부분이다.

-마당에서 툇마루를 바라보는 카메라가 일본영화 같은 느낌을 준다. <녹차의 맛>과도 비슷하고. =<녹차의 맛>을 보면서 정말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영화는 <좋지 아니한가>보다 훨씬 하이 레벨이어서 걱정하지 않는다. (웃음) <녹차의 맛>은 가족 이야기이긴 해도 관계보다는 살아가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노을이 지는 마지막 장면이 좋았다. 가족으로 태어나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느끼는 정서가 좋았고, 같은 기억과 인상을 공유할 수 있다면, 가족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씨 가족이 사는 집은 실제 전주에 있는 집이고 드라마에도 비슷한 구조가 자주 나온다. 하지만 보통은 카메라가 툇마루로 들어가 화목한 느낌을 강조하기 때문에 낯선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나는 카메라를 마당에 두고 툇마루를 관찰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시나리오에는 언제나 창수를 지켜보는 죽은 첫사랑 순이가 등장한다. 그녀는 하은과 닮았다고 설정되어 있는데, 영화에는 나오지 않더라. =영화는 현실적인 매체이기 때문에 시나리오가 가지는 느낌이 살아날지 자신이 없었다. 몇 장면 찍기도 했지만 결국 삭제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창수의 내면을 미리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에는 없던 천변장면이 들어갔고, 창수의 내면은 그때 폭발해야 했다. 영화란 어차피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창수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증이 미리 해결되면 맥이 빠질 것 같았다.

-사람이 보지 못하는 달의 뒷면이 있다든지, 너무 세게 또는 너무 약하게 잡아당기지 않아야 한다는 대사들이 인상적이었다. 어미 치타가 쿨하게 새끼를 떠나보내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고 <말아톤>의 실마리를 잡았다고도 했었는데. =<말아톤>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는 것의 소중함에 관한 영화였던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다면 있는 그대로 행복한 지금을 인정해주자고. 가족영화는 대부분 서로를 이해하면서 끝나는데, 그건 이해하는 척할 뿐이다. 가족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올인하지 않아야 한다. 이건 카피로도 쓰려고 한다. 자식에게 올인하지 마세요, 부모에게 올인하지 마세요, 이런 식으로. (웃음) 우리는 모든 걸 다 퍼주고 사랑하다가 뒤통수를 얻어맞고선 배신감에 치를 떤다. 하지만 잡아당기는 인력과 떨어져나가려는 원심력이 균형을 이룬다면 그건 우주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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