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비도 없지만 ‘가오’ 때문에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필제(임창정). 철거 전문 깡패인 그는 어수룩한 똘마니를 데리고 재개발 대상지인 청송마을에 도착한다. 필제는 보스에게 사흘 안에 모조리 쓸어버리겠다고 호언하지만 처음부터 뜻대로, 맘대로 되는 일이 하나없다. 약 오르고, 독 오른 마을 사람들이 덤벼드는 통에 필제는 외려 도망다니기 바쁘다. 어찌 하다보니 임무는 뒷전. 필제는 지구를 수호하겠다는 엉뚱한 꼬맹이들에게 시달리게 되고, 게다가 사내인지 계집인지 모를 복서 명란(하지원)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 등 원치 않게 마을 반장 노릇을 하게 된다.
예상하듯이, <1번가의 기적>은 진흙탕 세상에 휩쓸려 살아온 한 남자가 오지나 다름없는 마을에 발을 딛게 되면서 순한 양으로 교화한다는 줄거리다. 굳이 표현하자면 필제는 철거촌으로 떠난 <선생 김봉두>라고 해야 할까. 아이들을 전학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쓰지만 결국 참선생 칭찬을 들었던 봉두처럼, 청송마을에 당도한 필제 또한 놀라운 기적의 상황을 경험한다. 그가 저지른 악행은 어찌 된 일인지 이 마을에선 선행의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제 잇속을 위해 필제는 자신이 방송사 기자라며 거짓말을 하고 윽박지른 결과, 철거 직전의 청송마을에는 수도물이 콸콸 쏟아지고 초고속 인터넷이 깔린다. 청송마을 사람들에게 그는 ‘슈퍼맨’이다(윤제균 감독의 전작을 챙겨봤다면, <두사부일체>의 코미디와 <색즉시공>의 로맨스의 결합이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1번가의 기적>은 배우들의 개인기에 의존하기보다 캐릭터들에게 고루 역할을 분배해 이야기를 끌어간다는 점에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한다. 극중 청송마을 사람들은 임창정, 하지원이 맡은 중심 캐릭터를 빛내기 위해 잠깐 소비되는 조연들은 아니다. 자판기와 슬리퍼로 사랑을 확인하는(?) 이훈, 강예원의 에피소드도 살아 있거니와 특히 경상도 사투리를 툭툭 내뱉는 아역배우들을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다만 기적과 현실이 맞부딪치는 후반부는 아쉽다. 도시의 폭력으로 파괴되는 청송마을을 지켜보다가 영화는 갑자기 에필로그에서 ‘기적처럼’ 점핑을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란 계단을 하루에도 몇번씩 올라야 했던 철거촌 사람들의 사연은 이젠 잊고, 무너진 그들의 집과 함께 땅에 묻어버리라는 듯이. 그런 기적에까지 박수를 보태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