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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쥐고 일어서, <1번가의 기적>의 하지원
장미 사진 이혜정 2007-02-15

그녀에게 한계란 어떤 의미일까. 노력하지 않는 배우가 어디 있으랴마는 그저 ‘부지런한 배우’라고 칭찬하기에 하지원의 정복욕은 끝간 데 없이 넓고 또 깊다. <색즉시공>에서 에어로빅을 선보이고 <다모>를 위해 와이어 액션과 무술, 리듬체조를, <형사 Duelist>를 위해 선무도와 탱고를 배웠던 그녀는 <1번가의 기적>을 준비하며 복싱에까지 손을 뻗었다. 아니, 이번에는 익혔다기보다 체화했다고 설명하는 편이 옳았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선 가짜로 때린대요. 이쪽 카메라에서 잡으면 저쪽에선 날아가고. 윤제균 감독님은 그렇게 찍고 싶지 않다며 진짜 맞고 진짜 때리라고 하셨어요. 배우들이 실제로 맞붙은 <주먹이 운다>를 보면서 걱정도 많이 했죠.” 시나리오가 좋았을뿐더러 윤제균 감독과의 협연에 이끌려 선뜻 결정하긴 했지만 ‘얼굴이 생명’인 여배우에게 이번 역할이 혹독하고 괴로우리란 건 처음부터 불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5, 6개월 정도 준비했는데 첫쨋날 맞는 연습을 하고선 집에서 이불 쓰고 혼자 막 울었어요. (웃음) 내가 왜 이 영화를 하겠다고 해서. (웃음) 계속 맞아보세요. 연기를 위한 연습이지만 진짜 짜증나고 아파요. 눈주위에 멍은 들었지 머릿속은 흔들리지 장난이 아니거든요. 한동안 그랬는데 어느 순간 시원해요. 그래, 때려라, 그게 맷집이었어요.”

날렵한 몸놀림과 그에 못지않은 날렵한 근육을 뽐내며 상대를 노려보던 복서 명란은 이렇게 탄생했다. 경기 도중 부상을 입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버지를 위해 동양챔피언 타이틀을 따내려는 명란은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이를 악물고 일어난다. “마지막 장면에서 붙었던 그 선수는 코가 약해진 상태였는데 감독님은 더 세게 치라고 하셨어요. 막 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피가 묻어요. 어, 너무 놀라고 흥분해서 몸이 덜덜덜 떨렸어요. 그땐 연기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어서. (웃음)” 고생한 정도만 놓고 본다면 그 뒤 촬영에 들어간 KBS 드라마 <황진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잠을 못 자니까 경련이 일어났어요. 경련을 방지하기 위한 약을 먹으니까 몸 전체가 오징어처럼 흐느적거리는가 하면 앞도 잘 안 보이고. 거기다 체력은 또 떨어지고. 병원에 실려가서 밤새 영양제랑 수액 맞고 촬영했어요.” 일정이 워낙 빠듯해 준비할 시간도 길지 않았지만 거문고, 가야금, 고전무용, 줄타기 등 황진이가 갖춰야 할 소양들은 셀 수 없었다. “고전무용은 처음이었는데 춤출 때 진짜 좋았어요. 많이 빠져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날아다니는 느낌이 들었죠. 춤을 배울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니 촬영 직전에 30분 배워요. 추다가 내가 창작도 하고. (웃음)” 그녀의 열성은 춤에서 그치지 않았다. 굳이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줄타기는 미리 익혀뒀기에 와이어를 달지 않고 혼자 줄을 탈 수 있었다. “덕분에 드라마에서 줄타기 장면이 많이 살았어요. 느낌부터 확 다르잖아요. 배우길 잘했다고 혼자 그랬어요. (웃음)”

책임감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노력파여서일까. 이 시대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을 자유인인 황진이가, 하지원은 부러웠다고 고백했다. “황진이 얘길 들으면 멋있었어요. 나와는 달라서 그런지 질투가 나기도 하고. 황진이는 갑자기 백두산에 가고 싶다며 훌쩍 떠나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남자를 자기가 가진 재주로 유혹하잖아요. 그런 카리스마가 좋았죠.” 노력과 동경의 크기에 걸맞은 보상도 뒤따랐다. 10월부터 2달간 방영된 <황진이>는 29.3%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끝맺었고 하지원은 이에 힘입어 2006 K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꿈이야 현실이야 그랬는데 집에 오니 실감나더라고요. 너무 좋았어요. (웃음)” 행복하게 마감한 2006년은 한편으로 무척 고통스러운 해이기도 했다. 주가 조작문제로 국정감사에 소환된 그녀는 한동안 구설에 시달리며 아픈 속을 삭였다. “드라마 찍으면서 많이 잊어요. 그래도 연기가 제일 좋구나 다시 한번 깨달았죠.” 섹시한 여대생에서 철없는 고등학생으로, 조선시대 형사에서 가난한 옆집 소녀로, 다부진 복서에서 매혹적인 기생으로 예측할 수 없는 행보를 엮어가는 하지원. 어쩌면 가지 않은 길보다 당당히 맞서 선택한 길이 훨씬 많을 테지만 그녀는 여전히 변화를 꿈꾼다. “도전하고 싶어요. 모험을 너무 좋아하죠. 사실 제가 하고 싶은 장르는 스릴러예요. 외국 여자배우 중에 스크린을 장악할 정도의 힘이 느껴지는 분들이 있잖아요. 드라마는 캔디 같은 역할을 주로 했지만 영화에선 강한 역할을 하고 싶어요. 좋은 스릴러영화가 있다면 언제든지 출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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