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람피기 좋은 날’은 없다는 것이 영화의 결말이다. 30대 초반의 중산층 유부녀 ‘이슬’(김혜수)과 ‘작은새’(윤진서)는 채팅으로 사귄 남자를 만나 바람을 피운다. 대범하고 솔직한 이슬은 열살 연하의 대학생(이민기)과 발랄한 외도를 즐기고, 내숭형의 작은새는 이쪽 방면 선수인 ‘여우두마리’(이종혁)를 한껏 애태우다 자신의 성적 로망을 충족시킨다. 영화에서 이슬과 작은새의 내면은 이미지들로 설명되고 있다. 깨진 어항에서 튕겨나와 길바닥 위에서 퍼덕이는 붕어나 완전 진공상태로 밀봉된 채 열리지 않는 양념병은 작은새나 이슬의 실존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람피기 좋은 날>은 ‘섹시코믹드라마’라는 컨셉대로 상당히 코믹하다. 이슬과 대학생은 가히 18금(禁)급의 수위 높은 대화를 주고받지만 에로틱한 효과보다도 웃음을 유발하고, 작은새와 여우두마리가 모텔에서 섹스를 빌미로 밀고 당기는 모습은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영화의 전반부는 표방한 슬로건에 맞게 도발적 언어와 유머로 충만했으나, 후반부로 가면서 ‘자유’라는 주제를 탐구하려 했다는 감독의 의도가 실종된다. 바람 피우는 현장을 발각당하고도 “치사한 인간”이라고 남편에게 쏘아붙이던 당당하고 쿨한 이슬이 울먹이며 남편의 외도 사실을 폭로하는 장면은 영화의 전후반이 갖고 있는 괴리를 내보인다. 또한 특이한 성적 취향을 집요하게 요구하던 작은새는 돌연 바람둥이에게 배신당한 비련의 아줌마가 된다. 이런 신파조의 봉합은 바람을 피운 아줌마들에게 면죄부를 주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의 내용을 자유와는 거리가 먼 진부한 불륜 이야기로 만든다.
이들의 바람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바람은 작은새가 상상하는 가스불 위의 압력밥솥처럼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한 일이다. 이토록 위험한 바람을 즐기던 아줌마들은 심신이 피폐해진 채 바람을 멈춘다. 결국 <바람피기 좋은 날>은 전복적 시선으로 출발하여 체제 순응적 태도로 안착하는 모순된 양면을 갖고 있다. 물론 영화의 결말은 여러 가지 독해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나 후반부의 갑작스러운 비약은 생뚱맞다는 느낌을 준다. 아줌마들이 모여 경쾌한 몸동작에 맞춰 <바람아 멈추어다오>를 부르는 모습은 활짝 웃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고달픈 바람을 애써 외면하려는 노력 같아서 왠지 안쓰러워 보인다. 감독의 의도는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았지만 개성이 뚜렷한 네명의 캐릭터를 잘 살린 연출 솜씨는 유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