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기획리포트
<씨네21>이 뽑은 이달의 단편 10. <세렝게티1.0>
오정연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7-02-09

창틀에 갇힌 초원같은 가상현실의 사랑

영화가 시작하면 인적없는 초원이 화면에 가득한 가운데 제목이 떠오른다. <세렝게티1.0>. 이내 카메라는 줌아웃하고 초원은 스산한 빈 빌딩의 창틀 안에 갇힌 풍경임이 밝혀진다. 영화의 모든 것은 이 짧은 오프닝에 담겨 있다. 드넓은 초원의 대명사인 세렝게티의 이름을 딴 영화의 제목은 일종의 가상현실 프로그램. 가상현실을 통해 정신병을 치료하는 근미래에서 환자 중 한명인 주인공 소녀는 세렝게티의 관리를 맡고 있는 정체불명의 남자를 향해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고백한다. 현실세계에서 그 남자는 사실 뇌사상태에 있는 몸으로, 업그레이드를 앞둔 초기버전 ‘세렝게티 1.0’과 함께 조만간 사라질 운명이다.

<세렝게티 1.0>은 적막한 벌판과 황폐한 빈 건물과 각종 공터 등을 배경으로 한다. 딱 떨어지는 로케이션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을 것 같지만 이성관 감독의 대답은 예상과 다르다. “꽤 오랫동안, 영화를 찍은 송탄에 살았어요. 미군부대가 들어서게 될 초원을 보면서 그곳을 배경으로 멜로영화를 구상했죠. 그러다가 너무 진부하고 지루한 장르영화를 피하기 위해 SF적인 요소를 넣게 됐어요.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병원까지 모두 그 근처에서 섭외했고, 마침 폐건물 등이 눈에 띄어 그런 장소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금처럼 시나리오를 수정하기도 했죠. 운이 좋았어요.” 이성관 감독의 행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분짜리 SF멜로 단편의 제작비 100만원 중 30만원은 삼고초려 끝에 부산에서부터 올라와 카메라를 잡아준 김선국 촬영감독이 쾌척했다. 나머지 제작비 역시 감독이 몸담고 있는 교회의 신도들이 3만, 4만원씩 걷어준 것이며, 그들 중 일부는 영화 속 단역으로 직접 출연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세렝게티1.0>에서 환자들을 치유하는 바이올린 소녀 역시 교회 목사님의 딸로, 극중에서 연주한 음악은 본인이 직접 작곡까지 겸했다. “제 영화는 개런티를 배우들이 지불하면서 출연하는 게 특징이죠. (웃음)”

주위 사람들의 무한한 조력으로 영화를 완성한 이성관 감독은, 중학교 때부터 감독을 꿈꿨다. 19살 이후 동네 친구며, 함께 영화를 배운 네오필름아카데미 동료들과 20편 가까운 영화를 만들었으며, 4년 반 동안 특전사로 군생활을 할 때는 군대 내 경연대회에서 뮤지컬 연극을 연출하여 25인치 TV가 부상으로 주어지는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부터 전단지 돌리기, 신문배달, 세차사업, 음식점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생활비와 영화제작비를 손수 벌었고, 방송 드라마 촬영부, 영화 엑스트라 출연 등의 아르바이트는 촬영과 연출에 대해 배우는 기회로 삼았다. 종합촬영소에서 몇 시간씩 대기해야 하는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조선시대 세트를 배경으로 작은 카메라를 이용해 혼자서 영화를 찍어볼 정도였다.

“사실 제가 돈이 없어요. 가난하거든요.” 이성관 감독은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누나와 단 둘이 살았고, 고3 때 누나가 결혼한 이후에는 혼자 힘으로 살아왔다. 쉽지 않은 인생이지만, 그는 언제나 웃는 인상이다. “포기하지 않으려고요. 영화를 만들면서 배우는 게 많고, 앞으로 배울 것도 많아요. 계속해서 영화를 찍는 게 현재의 목표입니다.” 한없는 우울에서 빠져나오는 데 도움이 된 종교에 보답하기 위해 기독교영화를 제작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역시 소중한 계획이라고 감독은 덧붙인다.

상상마당 단편영화 상시출품

아마추어 영화작가 발굴을 위해 KT&G가 마련한 ‘상상마당 단편영화 상시출품’ 2006년 12월 우수작 3편이 발표됐다. 11월25일부터 12월31일까지 KT&G 상상마당 온라인 상영관(www.sangsangmadang.com)에 출품된 63편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한 결과, 이성관 감독의 <세렝게티1.0>, 고수진 감독의 <해, 바라기>, 정민규 감독의 <하루> 세편이 우수작으로 선정됐다. 이들에게는 창작지원금 100만원이 각각 수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