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문명이 번창하던 시기, 숲속에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표범발’(루디 영블러드)의 부족이 살고 있다. 표범발과 동료들은 어느 날 이 숲에서 타 부족의 피난 행렬을 보며 불안감을 갖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새벽 잘 단련된 전사들이 침입해 마을은 쑥대밭으로 변한다. 침략자들은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강간한 뒤 대다수를 산 채로 붙잡는다. 아내와 아들을 땅속 구멍에 숨긴 표범발 또한 이들에게 붙들려 어디론가 끌려간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 마야문명권의 도시. 침략자들은 마을 주민을 하늘에 바치는 제물로 삼으려 한다. 급작스러운 개기일식과 함께 표범발은 침략자들에게서 탈출할 기회를 얻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복수극이 시작된다.
멜 깁슨의 4번째 연출작 <아포칼립토>는 소문만큼이나 잔혹하고 폭력적이다. “네 살 껍질을 벗긴 뒤 그것을 입은 모습을 네게 보여줄 거다”라는 분노에 찬 대사는 (다행히도) 장면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영상은 보통 사람이 감내하기 쉽지 않은 수준이다. 뼈다귀처럼 생긴 무기로 사람의 머리를 짓부수거나 흑표범이 사람의 머리를 씹어먹거나, 말 그대로 목을 따거나. 이 영화가 보여주는 ‘고어영화’ 수준의 잔혹한 영상은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연출자 멜 깁슨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그랬듯, 영화 속 인물들이 느낄 법한 고통을 그대로 관객에게 안겨주려 하는 듯 보인다.
이토록 폭력을 적나라하게 묘사함으로써 멜 깁슨은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 “위대한 문명은 내부에서 붕괴되기 전까지 정복되지 않는다.” 로마제국 멸망 원인에 관한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윌 듀란트의 발언으로 이 영화가 시작하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단순화하자면, 듀란트의 말처럼 마야문명 또한 내적으로 붕괴했기 때문에 멸망했다는 게 이 영화의 주장이다. 위대한 문명을 상징하는 화려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 극소수 생각없는 지배자들의 만족을 위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의미없이 고통받고 죽어갔음을 이 영화는 생생한 묘사로 전하려 한다. 이것은 기존의 역사관에 대한 도전이다. 멜 깁슨은 평화롭고 조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원주민들이 문명화된 서구인들에 의해 유린당했고, 그들의 순결한 땅이 정복당했다는 ‘정설’을 돌파하려 한다. 물론, 그의 역사관은 하나의 이론으로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엄청나게 자극적인 수단을 통해 논쟁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태도까지 인정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그 수단이 ‘순수한 아드레날린 덩어리’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