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에서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나중에 엄청 씹더라도 대통령이 의회에서 연설하면 민주·공화당 가릴 것 없이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그것도 여러 번 친다는 것이다. 별말 아닌데 막 웃어주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에서 연설할 땐 일어나긴커녕 끝나고도 박수 안 친 의원들이 많았다(그래서 이번엔 카메라 앞에서 혼자 해도 될 새해 국정연설을 그 늦은 시간에 국무위원과 공무원 등 ‘당분간 내 편’을 잔뜩 모아놓고 했나보다. 끝나고 <주몽> 같이 볼 것도 아니면서). 부러운 건 또 있다. 유력 정당의 대선 후보로 여성이랑 흑인이 앞서나가는 거. 우리에게도 근혜 언니가 있지만 인혁당 무죄 판결에 대해 측근들도 감히 의견을 묻지 못할 정도의 싸늘함을 자랑하시니 여전히 아씨 혹은 마님이라 불러야 할 것 같고, ‘불후의 명빡이 동영상’으로 저잣거리에 나앉으려 애쓴 그분은 그래봤자 미국으로 치면 영락없는 와스프(백인 기독교도 중산층, 한마디로 귀족)다.
사실 우리 정치인들은 출신성분으로 따지면 거기서 거기다. 비록 개천의 용도 있지만, 무시무시한 학력·학벌 사회에서 강기갑·단병호·최순영 의원 등을 제외하고는 출신성분이 비슷하다. 당이 다르다는 것 빼곤 계급적으로는 ‘같은 편’끼리 왜 저러나 싶을 때도 많은데, 요즘엔 같은 당 안에서조차 개혁/중도/사수파로 갈라져 줄줄이 뛰쳐나오거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거나 목청만 높이는 걸 보니, 그저 좀 살살하시라 말씀드릴 수밖에. 내가 워낙 ‘다크한’ 성분이 많아서인지 성분 맞는 사람들끼리 정당판을 새로 짜려는 것 자체도 꽤 다크해 보인다. 성분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발현되는 방식이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공 표지판을 바꿨다. 아기를 안고 있거나 기저귀를 가는 표지판의 주인공은 이제 치마 입은 여성이 아니라 바지 입은 남성이다. 말과 그림은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많은 것을 상징하기 때문이란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자중지란 끝에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하면서 굳이 다른 명분을 내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미 그림 다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