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난 남녀가 시련을 겪으며 사랑에 빠져든다. <사랑해도 참을 수 없는 101가지>는 사랑을 성취하는 과정에 집중하는 로맨틱코미디 공식에 그 뒤의 상황들, 즉 함께 살며 맞닥뜨리는 지난한 괴로움의 시간을 덧붙인다. 이렇듯 <사랑해도…>는 사랑의 달콤함에서 남자와 여자의 심리 차이를 짚은 존 그레이의 유명한 저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설파하는 쌉싸름한 사랑의 인내로 무게중심을 옮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제목과의 연관성은 전혀 찾아보기 힘든, 사회생활의 고통을 감내하며 성장하는 두 청춘의 얘기를 그려내고자 한다.
로스쿨 졸업반인 드류(마틴 핸더슨)는 같은 대학 4학년생 줄리아(파이퍼 페라보)를 사랑한다. “이 세상은 멋져. 이 바지도 멋져. 저 달도.” 줄리아의 미소에 감동한 드류는 무지갯빛 세상을 향해 소리치지만 파릇파릇한 이 연인에게도 이별은 다가온다. 졸업 뒤 거처가 이미 정해진 터라 각기 예정된 직장을 위해 헤어져야 하기 때문. 난생처음 격렬한 감정에 휩쓸린 드류는 줄리아에게 회사도, 친구도, 부모도 버린 채 자신을 따라 LA로 떠나자고 설득한다. 사랑의 힘만 믿고 시작된 이들의 동거는, 그러나 드류가 변호사 시험에 붙지 못해 회사에서 쫓겨나고 줄리아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전공과 무관한 회사에 입사하면서 삐거덕거린다. 줄리아의 결혼에 대한 욕망과 드류의 사회적 성공에 대한 집착이 평행선을 이루는 순간 냉랭한 이들 사이에 진짜 결별의 기운이 감돈다.
<사랑해도…>는 간간이 삽입된 드류의 내레이션을 무기로 남자의 허물을 들추며 관객의 마음을 공략하려 하나 똑똑하고 야무진 줄리아를 결혼을 애걸하는 여자로 변모시키는 실수를 범한다. 줄리아 역을 맡은 파이퍼 페라보는 <코요테 어글리>에서 숫기없는 바이올렛을 연기하며 발산했던 신선한 매력을 잊은 듯하다. 더구나 인내하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여자나 연인이 있음에도 한눈을 파는 남자의 모습은 너무 많이 반복된 이미지라 공감이 가지 않는다. <비포 선셋>을 연상시키는 마지막 해피엔딩이 감정적 반향을 불러내지 못하는 것은 이처럼 각 캐릭터들에 새로움을 주입하는 대신 손쉬운 길을 따라간 까닭이 아닐까. <사랑해도…>는 결국 로맨틱코미디의 귀여움도, 연애지침서의 친절한 설교도 충분히 살려내지 못한 어정쩡한 영화에 그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