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에서 모두가 알아주는 불량소녀이자 ‘칠공주파’의 리더인 세리(곽지민)는 같은 반 꽃미남 기찬을 짝사랑한다. 하지만 마음을 고백하는 세리에게 기찬은 날라리는 질색이라며 모범생 윤미(임성언)를 마음에 두고 있음을 암시한다. 윤미도 기찬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음을 감지한 세리는 고의적으로 윤미에게 접근하고, 기찬이 모범생이 아닌 날라리를 좋아한다는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그때부터 윤미는 세리의 지도하에 ‘날라리 연습’을 하고, 반대로 세리는 윤미에게 공부를 배우기 시작한다. 서로의 세계에 다가서면서, 두 소녀 사이에는 점차 우정이 싹튼다.
<소녀X소녀>는 채널CGV가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과 손잡고 제작한 HD영화로, 케이블TV 자체 제작 영화로는 최초로 극장에서 개봉하는 작품이다. 이른바 ‘명랑섹시학원스캔들’이라는 테마로 만들어지는 4편의 옴니버스 중 한편으로, <전쟁영화>로 2006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단편영화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박동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단편에서 안정적인 연출력을 보여주었던 감독의 솜씨는 긴 호흡의 무대 위에서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구성과 경쾌한 리듬, 시선을 사로잡는 화사한 색감과 아기자기한 소품까지, <소녀X소녀>는 학원물이라는 소재에 솜사탕처럼 발랄한 형식을 적절히 조합시켰다.
산뜻하게 만들어진 부대에 담긴 것은 그러나, 낡은 술이다. 모범생, 날라리, 꽃미남 등 스테레오 타입화된 역할 설정이 보여주듯, <소녀X소녀>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 붙여진 꼬리표의 상투성에 의해 규정되고, 분류된다. 모범생 윤미는 말 그대로 전교 1등에 목숨을 걸고, 날라리 세리는 나이트클럽을 출입하고 ‘삥’을 뜯으며, 꽃미남 기찬은 불량배들로부터 윤미를 구출한다. 대치동에서 전학온 수재, 학생을 편애하는 담임교사 등 주변 인물들 역시 전형성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매뉴얼에 따라 찍어낸 듯한 인물들로부터 신선한 드라마가 빚어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상반된 세계에 속한 두 소녀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된다는 영화의 메시지는, 근본적으로 그들이 속한 세계의 생명력이 결여된 탓에 극적 흥미도, 공감도 끌어내지 못한다. 모범생이 대담함과 의리를 배우고 날라리가 공부에 흥미를 붙이게 된다는 식의 정형화된 답안에 흥미를 느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작 ‘범생 티’를 벗어야 하는 것은 소심한 소녀가 아닌, 영화 자체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