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한 두 남녀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고 하룻밤을 함께 보낸 뒤 다음날 새벽 헤어진다. 이건 비교적 익숙한 상황이다. 신랑 신부의 친구끼리 눈이 맞는 일은 흔한 편이지만, <낯선 여인과의 하루>의 남녀는 좀 특별한 사연이 있는 사이이다. 사실 이 둘은 구면이고 이날의 만남은 12년 만의 해후이다. 현재 남자(아론 에크하트)는 긴 머리에 매우 유연한(?) 몸매를 소유한 23살짜리 댄서와 사귀고 있고, 여자(헬레나 본햄 카터)는 심장전문의와 런던에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영화는 원제가 말해주듯 그야말로 두 남녀의 대화 혹은 수다로 꽉 채워져 있다. 관객은 둘의 대화에서 그들의 현재 상황, 과거의 사연, 미묘한 지금의 감정까지 모든 정보를 얻게 된다. 대화로 모든 게 진행되는 영화이니만큼 ‘말맛’을 살리는 것이 관건일 텐데 두 배우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어 무리없이 진행된다. <전망 좋은 방>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에 출연했던 헬레나 본햄 카터는 12년 전 훌쩍 뉴욕을 떠나 혈혈단신 런던에 정착한 심리적 기복이 심한 여주인공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에린 브로코비치> 등에서 보았던 아론 에크하트는 능수능란한 솜씨로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 유머러스한 변호사 역과 어울린다. 두 사람은 쉴새없이 대화를 이어가면서 서로를 탐색하는데 그 와중에 상대의 애인, 남편에 대한 질투심을 표현하기도 하고 무심코 상처를 주기도 한다. 가령, 여자는 자신의 나이가 마흔이라는 사실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남자에게는 살이 쪘다고 툭 내뱉는다. 옛 애인에 대한 감정은 한마디로 정리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므로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는 이들의 대화는 어쩌면 매우 현실적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화면이 둘로 분할되어 있다는 것이다. 화면분할의 효과는 때론 남녀의 동상이몽 심리를 표출하기도 하고 때론 현재와 대비되는 과거를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하나로 통합되기 어려운 복잡한 남녀의 심리상태나 불확실한 기억들이 나누어진 화면 속에서 서로 충돌하거나 보완해주면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흠이라면 시종일관 분열된 상태를 견디면서 영화를 감상해야 한다는 점이다. 성숙한 남녀의 밀고 당기기식 대화로만 영화가 진행되는 것 역시 다소 단조로운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즐길 만한 묘미가 있다. 칼라 브루니가 부르는 샹송도 감상할 포인트 중 하나이다. <낯선 여인과의 하루>는 제18회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