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많이 보다보면 영화들간의, 혹은 영화와 문학 작품간의 재미있는 관계들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장>을 바탕으로 베르너 헤어초크의 영화 <아귀레 신의 분노>의 설정을 차용해 만든 영화 <지옥의 묵시록>이 아마 그 좋은 예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나쁜 원작에서는 반드시 나쁜 영화가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수많은 시나리오 작가들과 감독들이 이미 검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고전을 영화화하거나, 혹은 현대적인 내용으로 각색하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는 작품을 많이 남겨 최근 몇년간 영화게로부터 끊임없는 구애의 손짓을 받아온 작가가 한명 있으니, 바로 제인 오스틴이다. 지난 95년 리안 김독이 영화화한 <센스, 센서빌리티>와 로저 미첼 감독이 영화화한 <설득>을 시작으로 96년 <엠마> 그리고 99년 <맨스필드 공원> 등 무려 4작품이 연속적으로 영화화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의 작품들을 현대적으로 차용한 작품들도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엠마>의 이야기를 알리샤 실버스톤이 등장하는 베벌리힐스의 아이들 이야기로 바꾼 95년작 <클루리스>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에 개봉한 <브리짓 존스의 일기>도 원작소설 자체가 제인 오스틴의 작품 <오만과 편견>에서 많은 부분 아이디어를 가져왔다는 사실.그런 두 소설의 인연은 당연히 영화로까지 이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시나리오 작가 중 한명인 앤드루 데이비스가 95년 방영되었던 <오만과 편견>의 TV 미니시리즈 각본을 썼다는 사실. 더욱 놀라운 것은 <브리짓 손스의 일기>에서 마크 다아시 역을 연기한 콜린 퍼스의 경우, 미니시리즈<오만과 편견>에서 미스터 다아시라는 등장인물로 출연했다는 점이다. 이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쓴 헬렌 필딩이 마크다아시라는 등장인물을 염두에 두었다고 밝힘에 따라 더욱 의미심장해지는 부분.
그런데 이번엔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염감을 얻어 만든 단편영화 한편이 영국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진짜 브리짓 존스>라는 제목의 그 영화는 약관 26살의 루퍼트 하우가 감독한것. 루퍼트는 첫 번째 작품 <트랙스>로 영국 감독협회 단편부문 감독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영국 영화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영국인들을 사로잡은 브리짓 존스에 마음이 끌린 그는, 영국의 대표적인 단편영화 지원자인 채널4에 <진짜 브리짓 존스>라는 제목의 아이디어를 제출했다.그 내용은 실제 이름이 브리짓 존스인 영국의 여성 4명의 이야기를 각 3분씩 총 12분에 담는 것. 당연히 채널 4는 그 아이디어에 만족했고, 영화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개봉된 지난 4월13일을 앞둔 4월9일까지 매일밤 7시 50분에 채널 4를 통해서 방영되었다.방영 이후 <진짜 브리짓 존스>는 각각 20대, 30대, 40대, 50대로 영국에서 살아가는 4명의 브리짓 손스의 삶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20대의 브리짓 존스편은 정보통신회사의 매니저인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자신을 찾기위해 섬으로 여행을 가는 25살된 브리짓 존스의 이야기를, 30대의 브리짓 존스편은 경찰관으로 일하지만 언제나 그 일을 그만두고 싶어하는 32살의 브리짓 존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40대의 브리짓 존스편에서는 음식에 관한 70여권을 집필한 브리짓 존스를, 50대의 브리짓 존스편에선 공항 상점에서 향수를 팔면서 술과 담배와 쇼핑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58살의 브리짓 존스의 이야기를 3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심도 깊게 다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여하튼 <진짜 브리짓 존스>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개봉을 코앞에 두고 방영되어, 영국인들에게 영화속의 브리짓 존스가 현실과 동떨어진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면서 흥행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배급사가 `누구에게나 내면에는 브리짓 존스가 있다`라는 컨셉을 마케팅과정에서 강조했던 것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것.그러나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진짜 브리짓 존스>를 찾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인터넷 상영관을 뒤져보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채널4>와의 관계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이는데,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매료된 영국 이외의 관개을 위해 조만간 <진짜 브리짓 존스>가 인터넷을 통해 광개될 것이란 기대를 가져본다. 이철민/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브리짓 존스의 일기> 공식 홈페이지 http://www.miramax.com/bridgetjonesdiary/Powells.com 헬렌 필딩 인터뷰 http://www.powells.com/authors/fielding.html<진짜 브리짓 존스> 공식 홈페이지 http://www.bridgetjones.v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