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세계 영화계를 흔든 인상적인 전쟁영화 두편은 사실 장르영화와 멀리 위치한 작품이다. 굳이 두 영화의 공조를 역설하고픈 건 혹시 있을 법한 부당한 평가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스타일 면에서 켄 로치 영화로서도 새로울 게 없으며, 유머라는 로치의 미덕을 제거한 무뚝뚝한 얼굴로 지루한 민족주의를 강의하는 듯하고, 심지어 일부 평론가로부터 역사적 사실과 다른 점을 지적받기도 했다. 그러나 비슷한 갖가지 오해에서 벗어나 감독의 본질을 되살렸을 때에야 <그림자군단>이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처럼 <보리밭을…>이 민족주의를 고취하고 영웅을 찬미하며 역사를 고쳐 쓰려는 전쟁 스펙터클이 아님을 깨달아야만 영화의 진정한 의미가 발견된다. 밝히자면 <보리밭을…>은 지금도 살아남아 자유와 평등의 씨를 말리고 있는 제국주의를 저주하는 영화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다 로버트 조이스의 시에 가슴이 뭉클하더라도 울음은 뒤로 미뤄야 한다. 로치가 진정 말하고 싶었던 한마디는 ‘가장 강력한 나라가 전쟁의 위협을 가하는 상황’이라는 극중 대사였으니, <보리밭을…>은 지루한 전쟁영화가 아닌 로치가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신념인 억압으로부터의 자유와 계급의 단결을 위한 영화로 남는다. 신념이 그대로라면 설령 스타일이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작가에게 죄는 없다. DVD에는 실려 있는 한편의 다큐멘터리는 제목부터 로치의 뜻을 지지하려는 듯 ‘꺾이지 말고 계속해요, 켄’(47분)이다(실은 로치가 좋아하는 시리즈물의 제목에서 따왔다). 함께 작업해온 사람들에게 진실한 인간 그 자체로 평가받는 로치를 그려낸 다큐멘터리는 그가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평론가 데릭 말콤이 말한 대로 “인간애로 넘치는 사회주의자”인 로치가 “과거에 대해 진실을 이야기한다면 현재에 대해서도 진실을 말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이 시대의 가장 소중한 감독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