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시아 공동제작물(특히 사극 블록버스터 분야)에는 전혀 새로운 것이 없지만, 한국에서 이제 막 개봉한 <묵공>은 이 컨셉으로 새로운 혁신을 이뤄냈다.
1600만달러 예산의 이 작품은 홍콩, 중국, 한국, 일본에서 투자자를 끌어모았고, 국제적으로는 서양 세일즈사가 판매를 진행하고 있으며, 홍콩, 한국, 중국, 대만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 주요 스탭에는 일본 촬영감독과 작곡가, 홍콩 편집기사와 무술감독, 중국 본토 프로덕션디자이너와 의상디자이너가 포함됐다. 그리고 홍콩 감독 장즈량이 쓴 시나리오는 고대 중국의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일본 소설과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보다 더 범동아시아적일 수는 없다. 그렇지만 가장 놀라운 사실은(그리고 이 영화를 정말 아시아 공동제작물의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놓은 것은) 그 조합이 실제로 성공적이었다는 것이다.
국제 공동제작은 영화업계에서 지뢰밭이나 마찬가지다. 재정적으로 보면 늘 이치에 맞는 것 같긴 하다. 즉, 이용 가능한 돈이 더 많고 각각의 지역에 판매하는 것이 더 쉬워지고, 극장 간판에서 더 넓은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예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보면 성공작보다는 실패작이 더 많았다. 심지어 ‘대중국권’(즉 중국, 홍콩, 대만) 내의 공동제작도 모든 당사자를 만족시키는 경우가 드물었다. 언어문제, 즉 베이징어 사용자와 비사용자를 맞추는 것이나, 굵고 탁한 중국본토 발음과 노래 부르는 듯한 대만 발음과 시끄러운 광둥어를 화해시키는 것은 제쳐두고라도, 이 중국 지역 세곳의 관객취향은 유럽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관객 취향이 서로 비슷한 정도밖에 안 된다는 문제도 있다.
이 조합에 한국인과 일본인까지 추가하기 시작하면, 문화적으로 엉겨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 이를 듯이 보일 것이다. 유럽 영화관료들이 정부 돈을 즐겨 대주는 끔찍한 ‘유럽-푸딩’의 아시아판 말이다. 그렇다면 <목공>은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실패한 데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묵공>은 <무사>와 같은 몇 가지 이유로 성공했다. 바로 탄탄하고 잘 구성된 각본과 관객이 배우들의 각기 다른 국적이나 종종 발생하는 립싱크 문제에 대해 신경쓸 틈을 주지 않는 멋지게 균형 맞춘 최상급의 캐스트다. 베테랑인 유덕화와 안성기는 멋진 적수 한쌍을 만들어낸다. 각 배우의 스크린상 페르소나가 자기가 맡은 인물을 키워준다(교활하고 약삭빠른 유덕화와 지혜롭고 공손한 안성기). 이와 비슷한 식으로 젊은 스타 적수로서 한국 배우 최시원과 대만 스타 오기륭 또한 균형잡힌 캐스팅을 이뤄냈다. 동시에 중간층은 노련한 중국본토 배우 왕지웬(부정한 양적 왕자 역)과 떠오르는 중국 여배우 판빙빙(정직한 기병대원 역)으로 채워졌다.
캐스팅상 이러한 형식적 구축은 장즈량의 연출로 인간적인 차원이 더해진다. 역사블록버스터 연출자를 고를 때 장 감독을 선택한 것은 뻔히 들여다보이는 일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형이상학적 드라마를 연출한 그의 경험이 여기서 성과를 거둔다. 장즈량은 인물들에 감정적 실체를 더해준다. 이는, 예를 들어 첸카이거가 <무극>에서 하지 못한 것이다.
진정 <묵공>을 향상시킨 것은 만화스러운 비주얼로 가지 않은 것과 원작 소설이나 만화의 분위기를 복제하려 들지 않겠다는 결정이었다. 1991년 발행된 소설 후기에서 일본 작가 겐이치 사케미는 실제로 기원전 4세기 중국 문화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고, 그래서 묘사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걸 인정했다. 그러나 장 감독과 그의 제작팀은 꽤나 많이 알고 있고, 근본적으로는 휴먼 스토리인 영화에 마땅한 현실적인 배경을 깔아주었다. <무사>에서처럼 이야기를 받쳐주며 이끌어가는 건 CG가 아닌 인물이다. 미래의 범아시아 블록버스터들이 잘 기억해둬야 할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