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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밖 현실에서 ‘실천’을 권유 <블러드 다이아몬드>
문석 2007-01-10

당신의 손가락 위 찬란한 빛은 검은 대륙의 피눈물이 반사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한 마을에 사는 솔로몬(자이몬 훈수)은 성실하고 진실한 남자다. 아내, 그리고 세 아이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그는 큰아들인 디아가 어부인 자신과 달리 의사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의 소박한 꿈은 마을에 들어온 몇대의 트럭이 내는 굉음 속에 스러진다. 반정부군인 ‘혁명연합전선’ 소속 게릴라들은 다짜고짜 마을 사람들에게 기관총을 난사한다. 이 아비규환 속에서 간신히 나머지 가족을 탈출시킨 솔로몬은 게릴라들에 의해 다이아몬드 광산의 노동자로 끌려간다. 그는 채굴 도중 귀하기로 소문난 핑크빛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고 이를 몰래 숨겨놓는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바로 이 100캐럿 상당의 핑크 다이아몬드 원석을 둘러싼 싸움을 그린다. 그렇다고 해서 다이아몬드를 놓고 펼쳐지는 인디아나 존스풍 활극을 상상하면 안 된다. 이 영화는 다이아몬드를 중심축으로 재생산되는 아프리카의 비극적인 현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 끔찍한 현실의 한 쪽에는 다이아몬드를 팔아 각종 무기를 구매하는 반정부 게릴라 조직이 있다. 이들은 마을을 하나씩 장악하는 과정에서 ‘정부에 투표할 수 없도록 하겠다’며 사람들의 팔을 자르거나 건장한 남성을 다이아몬드 광산에 풀어놓고 노예처럼 부린다. 다른 한편에는 서구의 거대한 보석회사가 존재한다. 이들은 금수 품목인 ‘분쟁지역 다이아몬드’를 몰래 밀수해 가공한 뒤 미국 등 세계시장에 내놓아 막대한 이익을 거둔다. 아프리카의 분쟁 지역에서 채굴된 다이아몬드를 놓고 서구 언론이 붙인 이름인 ‘피묻은 다이아몬드’는 그리 극단적인 비유가 아닌 셈이다. 이들 게릴라 조직과 보석회사 사이의 피로 얼룩진 거래를 연결하는 자는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다.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태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용병으로 자란 그는 아프리카를 뜨기 위해 보석 밀수를 자행한다. 솔로몬이 핑크 다이아몬드를 어딘가에 숨겼다는 소문에 그가 흥분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대니는 광산에서 일하다 정부군에 붙들린 솔로몬을 빼내주면서 일종의 거래를 제안한다. 핑크 다이아몬드가 숨겨진 곳을 가르쳐주면 난민 신세가 된 솔로몬의 가족을 찾게 해주겠다는 것. 다이아몬드가 묻힌 장소가 게릴라 장악 지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또 다른 파트너를 찾는다. 그것은 바로 양심적인 미국 저널리스트 매디 보웬(제니퍼 코넬리)이다. 기사를 통해 아프리카에서 자행되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기를 바라는 매디에게 대니는 보석 회사와의 모든 거래 내용을 소상히 알려주겠다며 편의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한다. 결국 아프리카 대륙을 떠날 자금이 필요한 대니, 가족과의 평화로운 삶을 바라는 솔로몬, 진실을 알리기 원하는 매디는 함께 핑크 다이아몬드가 감춰진 곳으로 떠나게 된다.

<블러드 다이아몬드>가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여타 할리우드영화와 다른 점은 진지함이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아프리카의 비참한 상황을 폭로하는 데서 머물지 않고 나아가 이 비극의 생산 메커니즘을 드러내려 애쓴다. 뿐만 아니라 ‘당신이 사려는 그 다이아몬드는 아프리카인의 흥건한 핏물이 배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거듭 발설해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밖의 현실에서 ‘실천’을 권유하기까지 한다. 이 영화의 개봉을 앞두고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회사인 드 비어스(영화에 나오는 보석회사 ‘반데캅’은 명백히 드 비어스를 겨냥한다)가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친 것이나 세계다이아몬드협회가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도 이 같은 파급효과를 익히 예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워너브러더스가 애초 시나리오작가인 찰스 리빗에게 제시한 이야기의 초안이 ‘희귀한 다이아몬드를 찾아 아프리카를 돌아다니는 두 백인 남성의 모험담’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최종본은 기특하기마저 하다.

그러나 시종일관 그저 살인귀처럼 보이는 반군 게릴라에 대한 묘사를 눈감아주더라도, 영화가 후반부로 치달으면서 이 가상한 뜻은 조금씩 상쇄된다. 두눈 뜨고 보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처참하게 묘사됐던 살육극은 차츰 장대한 전쟁 액션영화 장면과 디졸브되고, 뭔가 켕기는 거래로 시작됐던 대니와 매디의 관계는 무리한 로맨스로 발전된다. 또 자기밖에 몰랐던 이 아프리카의 외로운 백인 남자는 타인과 진실을 위한 영웅처럼 보이게 된다.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명확하던 주인공들이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가운데 ‘공동 선(善)’이 만들어지는 흥미로운 과정은 한순간에 뭉그러진다. 정치영화의 플롯과 멜로드라마의 캐릭터를 결합하거나 잔혹상을 묘사하기 위해 스펙터클을 신중하지 않은 방식으로 전시하는 등 <라스트 사무라이> <비상계엄> 등을 만든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연출은 확실히 윤리적으로나 영화적으로 애매한 구석이 있다. 간만에 성숙하면서 힘있는 남성상을 보여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가슴 찌릿한 진실성을 보여준 자이몬 훈수의 연기가 뭉툭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탓일 터. 물론 관객이 보석상 쇼윈도에 놓인 다이아몬드를 보며 가슴 아파하거나 척박한 아프리카 대륙을 떠올린다면,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의미없는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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