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한 아이> <이상한 소파> <윌로데일 핸드카> <쓸모 있는 조언> 에드워드 고리 지음 | 미메시스 펴냄
에드워드 고리는 그림책 작가다. 하지만 ‘그림책’이라고 쉽게 보면 안 된다. 주로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어내 그림과 글을 모두 수작업으로 완성한 그의 섬세하고 단정해 보이는 그림체에 혹해 어린이용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오그드레드 위어리의 재미있는 포르노’라는 부제가 붙은 <이상한 소파>의 예를 들어보자. 일단 ‘오그드레드 위어리’라는 이름은 저자 에드워드 고리의 영문 철자를 뒤섞어 만들어낸 것. 손바닥만한 크기의 책을 펼치면 용수철처럼 끝이 강하게 꼬부라진 영문 글씨 아래 한글 번역이 되어 있는 왼쪽 페이지와 간결하지만 필요한 요소를 단 하나도 빼놓지 않은 섬세한 그림이 실려 있다(고리는 책마다 글씨체를 달리 작업했다). 내용은 앨리스라는 여자가 공원에서 섹시하고 성기가 큰 사내를 만나 새로운 성의 세계에 눈을 뜨는 내용이다. 앨리스는 체격이 건장한 남자들과 다정하고 인정도 많은 여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글에서도, 그림에서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60쪽에 지나지 않는 책이지만, 중간쯤 가면 이 책의 줄거리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야기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에드워드 고리가 통일된 이야기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책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운한 아이>는 잔혹 동화를 연상시키는 기괴함이 돋보인다. 책 표지에 등장하는 기괴한 용은 소녀 샬럿 소피아의 기구한 삶을 내내 따라다닌다. 모든 그림마다 한구석에 혹은 복판에 용이 샬럿을 훔쳐보는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그림을 꼼꼼하게 볼수록 으스스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샬럿은 부유하고 다정한 부모님과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프리카로 간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어머니는 실의에 빠져 세상을 떠나고 샬럿은 기속학교로, 길거리로 떠돈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지만, 이 책은 단순하고 잔인한 결말로 찬찬히 다가간다. 마지막 그림의 오싹함을 설명하는 짤막한 한줄의 글은 에드워드 고리 특유의 신랄함을 느끼게 해준다. <쓸모 있는 조언>은 그 내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림의 여백과 그림 속 사람들간의 거리를 살피면서 보는 편이 좋다. 다리를 떠는 유령에게 실 한 가닥을 건네는 남자, 탑에서 몸을 던지는 여자, 먼 곳에서 울려퍼지는 총소리 등의 묘사와 그림을 따라가다 책에서 고개를 들면 낯익은 공간마저 초현실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저자 고리는 거의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했고, 1972년에는 작품집 <앰피고리>를 펴내 <뉴욕타임스>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주로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그림을 그렸지만, 정작 본인은 단 한번도 영국 여행을 한 적이 없이 2000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