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계든 그 안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보면 실제를 능가한다. 엠티를 가서 무리를 지어 놀다보면 언제나 내가 속하지 않은 다른 무리들이 더 재미있는 것같이 보인다. 하지만 막상 그 무리로 슬쩍 자리를 옮기고 보면 그 무리 속 사람들은 이전에 내가 있었던 무리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나의 귓가를 자극하던 웃음소리의 근원을 찾아 여기저기 무리를 전전하다보면 결국 웃음은 한번도 내 것이 되지 못한 채 귓가를 간질이고 사라져버린다. 그런 식으로 언제나 우리가 간절하게 욕망하는 대상은 한번도 우리 손에 잡히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비켜나가거나, 원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변형되어 손에 들어온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지금의 관계를 다른 식으로 대체하기를 욕망하고 현재는 늘 미완의 시간으로 남는다. 원하는 것은 언제나 닿을 수 없는 어딘가에 있다. 페르잔 오즈페텍 영화 <창문을 마주보며>는 그런 바라봄을 통해 어떻게 욕망이 발현되고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결혼 생활 9년차인 지오반나(지오반노 메조기오르노)의 삶은 열정이 고갈된 상태이다. 남편은 더이상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부부는 말다툼을 벌일 때를 제외하고는 대화도 거의 하지 않는다. 불안정한 직장을 가진 남편 때문에 그녀는 제빵사가 되고 싶은 꿈을 접고 생활비를 벌기 위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녀는 고단한 자신의 삶에 지칠 때마다 맞은편 건물의 창문 속에 비친 남자를 훔쳐보곤 한다. 어느 날 오지랖 넓은 남편이 길 잃은 노신사 다비데(마시모 지로티)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지오반나는 완벽한 외모와 직장을 가진 맞은편 창문 속 남자 로렌조(라울 보바)와 말을 나눌 기회가 생긴다. 그 이후 둘이 함께 노신사의 과거를 찾아주면서 지오반나는 로렌조 역시 자신을 계속 지켜봐왔음을 알게 되고, 그것은 그녀에게 잊고 있던 열정들이 되살아나게 한다.
<창문을 마주보며>는 로렌조와 지오반나의 사랑에 노신사의 과거인 나치즘과 유대인 학살, 다비데와 시모네의 동성애를 직조함으로써 진부한 멜로드라마로 빠져드는 위험을 피해간다. 지오반나와 로렌조의 사랑과 다비데와 시모네의 사랑은 둘 다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는 점에서 교차점을 형성하며 묘한 대칭을 이룬다. 다비데와 시모네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편지로 자신들의 감정을 교환했던 것처럼, 지오반나와 로렌조는 다비데의 과거를 찾아준다는 명목 아래 만나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다. 그래서 동성애가 금기시되던 시기에 ‘나무가 그냥 나무일 수 있는 세상’ 즉 자신의 정체성과 사랑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기를 바랐던 다비데의 편지는 로렌조와 지오반나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다비데는 자신과 자기의 사랑을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를 욕망했던 대가로 시모네를 잃게 되지만, 그의 편지는 긴 세월이 흐른 뒤 올바른 수신자를 찾아낸 셈이다.
2003년 이탈리아에서 개봉되어 최고의 흥행기록을 수립한 <창문을 마주보며>에서 지오반나는 위험한 욕망을 안고 비상하지만 결국은 가정이라는 안전지대에 다시 착륙함으로써 결혼과 가족에 대한 사회적 규약을 위반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떠올리게 만든다. 열정이 사라진 가정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여성이 매력적인 이방인에게 매혹당한다. 이때 그 외부인의 역할은 가족을 붕괴시키거나 전혀 다른 삶을 모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왜 가정을 지킬 수밖에 없는가를 확인시켜주는 데 있다는 점에서 두 이야기는 공통점을 갖는다. 지오반나는 로렌조가 자신을 바라보던 바로 그 창문을 통해, 자신이 로렌조를 바라보던 창문 뒤에 있는 자신의 가족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가족을 벗어나 로렌조를 욕망했던 자기 자신과 직면하는 순간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로렌조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영화가 대중적인 사랑을 받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처럼 바로 누구나 꿈꾸는 금지된 사랑을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수준에서 그렸다는 데 있을 것이다.
<창문을 마주보며>의 또 다른 강점은 미스터리적인 기법을 차용한 플롯과 절묘한 편집이다. 관객은 노인의 정체와 숨겨진 과거에 대해 계속 궁금증을 갖게 되는 동시에 현재 진행 중인 지오반나와 로렌조의 사랑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둘 중 어느 하나만 있었으면 다소 진부해졌을 두개의 이야기는 서로의 빈틈을 메워가며 꽉 찬 서사적 줄기를 형성해나간다. 그러는 동안 매혹적인 선율과 아름다운 화면이 물 흐르는 듯 흐르면서 노신사의 과거와 지오반나의 현재가 절묘하게 교차한다. 또한 미소인지 회한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의 지오반나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엔딩도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원래 자신의 자리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로 한 지오반나의 결정은 그녀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화면 가득 담긴 지오반나의 얼굴에는 ‘가지 않은 길’과 그녀가 택한 길, 그 두 갈래의 길이 다 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