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그래피’(fauxtographie)- 프랑스어의 ‘거짓’(faux)과 ‘사진’(photographie)을 합성한 조어로 <주말>에 등장한다- 로서의 영화가 어떻게 진실을 위한 거짓이 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물음은 고다르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가운데 하나다. 그러한 물음에 대면하여 고다르는 ‘백지상태’(tabula rasa) 혹은 ‘영’(zero)으로 돌아가 영화의 기본적 구성요소인 이미지와 사운드를 그 근본부터 다시 검토하고(<즐거운 지식>), 이미지의 생산과 배급에 있어 점점 지배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 텔레비전을 경유하여 이미지의 제작과정을 분석하기도 했다(<넘버2> <잘 돼 갑니까?>). 고다르의 1980년대 이후 작품들에 이 모험적 시기의 성과들이 유감없이 반영되어 있음은 물론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애초에 제기된 물음의 답변 형태로서가 아니라 좀더 정묘해지고 복수화된 물음의 형태로서다.
이미지의 정치학이라고 할 만한 고다르의 이 같은 사유와 더불어 우리 또한 답변이 없는 물음들만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깊은 숙고로 즐겁게 빠져들곤 하는데, 그 과정에서 종종 간과되곤 하는 것이 과학에 관한 고다르의 견해이다. 비평가이자 영화감독으로서의 고다르가 ‘발견’과 ‘발명’의 수사학을 종종 끌어대는 것도 영화(와 스스로)를 예술사뿐 아니라 과학사의 한 부분에 위치시키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는 뤼미에르 스스로가 “미래가 없는 발명품”이라 진술했던 영화의 과학적 기원을 잊지 않는다. 또한 영화와 정치의 몽타주를 근심하는 동시에 영화와 과학, 과학과 정치의 몽타주에 대한 사유를 병행한다. 물론 여기서 고다르가 자신을 위치시키는 곳은 언제나 영화이며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 정치와 과학은 ‘여기’(here)의 영화가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개입을 요구하는 ‘다른 곳’(elsewhere)으로서 기능한다. 즉 그는 “여기에 있는 것을 본다. 다른 곳에 있는 것을 찾기 위해.”(<탐정>)
물론 고다르는 정치학자가 아닌 만큼이나 과학자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정치학과 과학의 방법론을 영화적으로 ‘번역’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왔고 또 그러한 번역의 가능성에 대단히 민감한 시네아스트이다. 예컨대 <즐거운 지식>은 화학에서의 물질의 정성적(定性的) 분석방법을 이미지의 분석에 도입하려는 시도이다. 여기서 파트리샤란 인물은 이미지와 사운드를 “요소로 분해하고”, “환원시켜”, “치환기”를 만들고, “재배열한” 뒤에 사운드와 이미지의 올바른 모델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런가 하면 <잘 돼 갑니까?>는 ‘비트’(bit) 개념과 정보이론의 창시자인 클로드 섀넌의 노이즈(noise) 이론의 영화적, 실천적 적용이다. 고다르는 한 인터뷰에서 “노이즈는 단순히 기술상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고 말하면서, 동시대 유럽인의 삶을 바꿔놓은 ‘사회적’ 노이즈의 실례로서 베트남전을 들었다. 또한 그는 <열정>의 인물들이 “자기장 속을 가로지르는 철심들”로 고려될 수 있으며 이 영화는 그것들의 교차에 관한 이야기이자 비전이라는 식의 괴이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과학적 방법론의 예술적 전유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괴테의 소설 <친화력>을 떠올리게도 하는 고다르의 모험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그를 둘러싼 숱한 비평적 상투구들로부터 벗어나는 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이 다면체의 영화작가의 발걸음은 여전히 우리를 숨가쁘게 만든다.
상영작 소개
즐거운 지식 Le Gai Savoir 출연 줄리엣 베르토, 장 피에르 레오 | 1968년 | 컬러 | 91분
고다르의 필모그래피에서 1968년 이전에 ‘촬영’된 마지막 작품으로 누벨바그 시기와의 완벽한 절연을 선언하는 듯한 전위적 에세이 필름. O.R.T.F.(프랑스라디오텔레비전기구)의 제의로 만들어진 텔레비전용 영화로 본디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의 영화판으로 의도되었으나 결과물은 기대에 완전히 어긋난 것이었고 결국 방송은 거절되었다. 에밀과 파트리샤란 이름의 두 남녀가 7일 동안 밤마다 만나 사운드와 이미지에 관해 토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전기적 잡음에 섞여 들려오는 고다르 자신의 목소리, 1968년 5월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녹음된 사운드, 각종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등의 조합은 영화에 복잡성과 혼란의 감각을 부여한다. 고다르의 후기작 <영화사(들)>에서 그 절정에 달하게 될 에세이적 스타일의 시작이자 “영(zero)으로의 귀환”으로 일컬어지는 작품.
넘버2 Numero deux 출연 상드린 바티스텔라, 피에르 우드리 | 1975년 | 88분
고다르의 새로운 시작이자 이른바 ‘제2의 데뷔작’(이 영화의 애초의 제목은 <넘버2 : 네 멋대로 해라>였다). 비디오로 촬영되어 텔레비전 브라운관을 통해 보여지는 화면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한 뒤 35mm 필름으로 다시 촬영한 이미지들이 주를 이룬다. 급진노선을 표방했던 지가 베르토프 집단 시기 작품들의 교조적 특징이 거의 사라진 대신 1970년대 중반 고다르의 비디오 시기 작업들을 특징짓는 내밀한 스타일과 주제(일상과 텔레비전)가 뚜렷이 드러난다. 일종의 ‘공장’으로 정의된 현대의 일터, 가정, 영화작업, 육체 모두에 대한 전방위적 분석으로서의 영화. 포르노를 방불케 하는 성행위 묘사와 노출로도 악명 높은 작품인데, 고다르는 극중 인물의 입을 빌려 <넘버2>가 포르노이자 정치영화이며, 텔레비전이자 영화이며, 픽션이자 다큐멘터리라고 선언한다.
잘 돼 갑니까? Comment ca va? 출연 미셸 마로, 안 마리 미에빌 | 1976년 | 78분
누벨바그 시기의 <경멸>이나 후기의 <열정> <사랑의 찬가> 등처럼 고다르식 ‘영화에 관한 영화’, 즉 영화 만들기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로 이야기되는 작품이다. 특정한 이미지(사진)에 대해 집요한 논평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선 지가 베르토프 집단 시기의 <제인에게 보내는 편지>와 궤를 같이한다고도 볼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 가운데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은 불운한 영화이기도 하다. 좌파신문의 인쇄공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두 남녀가 토론을 벌이지만 끝내 영화는 완성되지 못한다. 1970년대 이후 고다르의 동반자가 된 안 마리 미에빌이 여주인공 오데트 역을 직접 맡았다. 노이즈를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일부로 간주하는 오데트/미에빌의 견해는 고다르 자신의 영화에서 각종 노이즈가 지니는 중요성에 대한 간접적 언급이기도 할 것이다.
열정 Passion 출연 이자벨 위페르, 한나 쉬굴라 | 1982년 | 87분
고다르는 한 인터뷰에서 <열정>의 이자벨(이자벨 위페르)이란 여인은 로베르 브레송의 <시골사제의 일기>의 주인공과 닮은 데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따라 <열정>을 한 노동계급 여성의 ‘수난’(passion)을 통해 기독교적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영화라고만 보기엔 이 작품의 결은 지나칠 정도로 풍성하다. 영화촬영장, 공장, 호텔 등 세 공간을 무대로 삼은 이 영화에서 고다르는 빛과 어둠, 낮과 밤, 진실과 허구, 사랑과 노동 등의 대립물들간의 ‘횡단’(trans)의 가능성을 다소간 모호한 방식으로 탐색한다. 렘브란트, 고야, 앵그르, 들라크루아, 엘 그레코의 걸작들을 영화적 활인화(tableau vivant)로 완벽하게 재현해낸 촬영감독 라울 쿠타르의 솜씨는 탄성을 내뱉게 만든다. 시몬느 베이유의 저서 <중력과 은총>에 대한 헌사이기도 한 이 영화를 두고 콜린 매케이브는 “가장 위대하고 아름다운 고다르 작품”이라 평하기도 했다.
탐정 Detective 출연 나탈리 바이, 클로드 브라쇠르 | 1985년 | 95분
2년 전에 일어난 살인사건을 조사 중인 탐정과 그의 삼촌 프로스페로, 빚에 시달리고 있는 복싱 프로모터, 그에게 빚을 독촉하는 한 부부와 마피아 일당 등이 한 호텔에 기거하고 있다. 영화는 각각의 인물들의 방을 오가며 이들간의 느슨한 ‘상호작용’을 보여주는데 종국엔 한바탕 총격전이 벌어지고 2년 전의 살인사건은 싱겁게 해결된다. 이 작품은 프로스페로의 책상에 가득 쌓여 있는 <세리 느와르> 시리즈에 대한 고다르식 논평으로 볼 수도 있고, 복싱 프로모터의 이름이 ‘짐 폭스 워너’라는 데 착안하면 할리우드영화 및 영화산업에 대한 코믹한 비판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고다르는 이 작품을 세명의 미국영화작가- 존 카사베테스, 에드거 울머, 클린트 이스트우드- 에게 헌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