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 <러시아워2>를 보고 오는 길입니다. 뭐, 1편이랑 크게 차이나는 영화는 아니더군요. 차이가 있다면 성룡의 영어 구사력이 그동안 조금 더 늘었고 크리스 터커의 농담은 종종 도가 지나칠 정도로 저질이 되었고 전체적으로 두 콤비는 전편보다 훨씬 호흡이 잘 맞아 보였고 액션과 코미디가 늘었고…. 또 뭐가 있나요? 네, 영어 대사가 단 두개밖에 없지만 여전히 시원스럽게 사람들을 두들겨패대는 장쯔이도 있었습니다. <무사>에서 눈물만 흘리는 연기에 조금 갑갑했던 터라 이 사람이 몸을 움직이는 걸 보자 속이 확 풀리더군요. 역시 몸을 움직여야 하는 배우들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나 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가서는 안 됩니다. 글의 주제가 따로 정해져 있거든요. 전 <러시아워2>에 대한 글을 써야 하는 게 아니라 <러시아워2>를 통해 최근 할리우드 버디 액션물의 유행에 대해 써야 합니다. 끝내려면 간단한 끝낼 수 있습니다. ‘모든 게 <리쎌웨폰>의 유행 때문이다!’라고 외치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의 수고로 원고료를 챙길 수는 없죠.
형사 버디의 시조는?
기초부터 따져봅시다. 현대 할리우드 형사물의 시조는 무엇일까요? 아마 한쪽 끝은 추리물에 닿아 있겠고 다른 한쪽 끝은 갱스터물에서 서부극에 이르는 수많은 액션 장르에 닿아 있을 겁니다. 이들 중 두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들이 얼마나 될까요?
정말 별로 없습니다. 서부극에서 <내일을 향해 쏴라> 같은 작품이 떠오르고 형사물에서는 <스타스키와 허치> <마이애미 바이스> 같은 텔레비전 시리즈가 떠오르지만 그뿐입니다. 더티 하리에게 파트너가 무슨 소용이겠어요. 대부분 형사물에서 파트너는 폭력 형사가 내미는 복수의 핑계입니다. 당연히 영화 초반에 죽죠.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액션 위주의 작품에서 주인공 수가 많으면 맥이 빠집니다. 서부극을 생각해보죠. 서부극의 결말은 악당과 주인공의 일대일의 대결이어야 합니다. 총 역시 악당에게 하나, 주인공에게 하나 주어져야 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클라이맥스가 산만해집니다. 아무리 착한 쪽에 두명이 있다고 해도 결국 마지막 총을 쏘는 사람이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고요.
추리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추리물은 액션보다도 더 폭이 좁습니다. 왓슨을 홈스처럼 똑똑하게 만들어놨다고 치죠. 셜록 홈스가 묵상하는 동안 왓슨 박사가 범인을 잡아 베이커 거리로 끌고 오면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진상이 하나면 탐정도 하나여야 합니다. 둘이면 중심없이 헛갈리기만 하죠. 독자들은 마지막에 완벽하게 일관된 설명을 요구하는데,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두 사람이 각자의 의견을 떠들어댄다고 생각해보세요. 둘의 생각이 같으면 어떠냐고요? 그렇다면 애당초부터 두명을 붙여야 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둘 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명탐정의 난제나 서부극의 위기나, 주인공 한명이 풀어야만 서스펜스가 자기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있으면 서스펜스는 반으로 줄어듭니다. 세 사람이 있으면 3분의 1로 줄고요. 그 결과 액션물에는 일종의 위계질서가 생기게 됩니다. 맨 위에는 악당들에게 정의의 총알을 날려대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그 밑에는 주인공한테서 액션장면을 빼앗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그의 모자란 점을 커버해줄 만한 보조 조연이 있고요. 그 밑에는 초반에 죽어 넘어지는 소모품 파트너들이 있습니다. 출신이 아닌 기능적인 이유로 배치되는 게 다를 뿐, 실제 사회의 계급사회와 특별히 다를 것도 없죠.
성룡과 크리스 터커, 알고보면 한 사람
그러다 어느 순간 이 계급구조가 타파되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주인공이라면 셋이나 넷보다 더 헛갈립니다. 사람이 많으면 앙상블 드라마가 될 수 있죠. 하지만 둘이라면 이건 전쟁입니다. <타워링>처럼 주인공들의 직업이 전혀 다른 영화에서도 두 주연배우들이 얼마나 요란한 신경전을 벌였는지 생각해보세요. 둘은 균형잡기가 결코 쉬운 숫자가 아닙니다. 이런 걸 무릅쓰고도 ‘둘’을 내세웠다면 뭔가 절실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러시아워> 시리즈에서 이유는 분명합니다. 성룡은 영어 구사력이 아주 뛰어난 배우는 아니죠. 홍콩영화에서와 달리 할리우드영화에서는 그의 떨어지는 영어 구사력을 커버할 무언가를 빈자리에 넣고 채워야 합니다. 이 경우 세븐 일레븐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말빨이 센 크리스 터커의 존재가 그 역할을 합니다. 성룡의 리 형사와 터커의 카터 형사는 악당을 걷어차는 팔다리와 수다떠는 입이 양쪽으로 몰려 쪼개진 한 사람입니다. 여기서는 두 개성의 충돌보다는 보완이 더 중요합니다.
그보다 살짝 위선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버디영화는 종종 할리우드에서 이퀄라이저의 역할을 합니다. <리쎌웨폰> 시리즈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인 주인공과 흑인 주인공을 나란히 내세워서 인종적 평등성을 슬쩍 과시하는 것이죠. <리쎌웨폰> 시리즈의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멜 깁슨이지만 그래도 요새 스크린 위를 뛰어다니는 흑인 액션 주인공들은 이런 식으로 주류의 자리에 오른 대니 글로버의 덕을 꽤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대니 글로버가 혼자 주연한 영화라면 보지 않았을 수많은 관객이 멜 깁슨과 함께 딸려온 그를 보고 익히기 시작했고 그러다 그 역시 상당한 거물로 굳어졌으니 글로버 역시 손해본 건 없죠. <러시아워>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성룡은 국제적인 스타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기반이 약하죠. 동양 배우를 그냥 내세우는 것보다는 홈그라운드의 장점이 있는 흑인 배우를 하나 붙여주는 게 흥행에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액션에 코미디를 허하라
그렇다면 요새 <리쎌웨폰> 식 버디 액션물들이 유행하는 건 순전히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군요? 외국 배우들의 부족한 면을 보완하고(갑자기 <아메리칸 드래곤>이 떠오릅니다! 왜 이 영화를 잊었나 몰라요) 적당히 인종 균형을 맞추어 위태로울 수도 있는 비판을 슬쩍 빠져나가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버디 액션물들이 이런 목적으로 시작되었을 리는 없습니다. 좀더 원초적인 이유가 있었겠죠. 예를 들어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버디물은 유리합니다. 영화보다 예산이 부족한 텔레비전 시리즈는 액션의 스케일이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게 필요하죠. 두 개성있는 캐릭터들의 충돌이 있다면 비슷비슷한 작은 액션들 사이에 생기는 빈자리를 충분히 채울 수 있습니다. <스타스키와 허치> 같은 시리즈가 장수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겠죠. 남녀 커플이지만 <엑스파일>도 이 부류에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조금 다른 이유일 겁니다. 여기서는 이전에 버디 액션물의 단점을 지적하기 위해 내밀었던 숫자 놀음을 다시 시작해보죠. 주인공 숫자가 둘로 늘면 서스펜스는 반이 됩니다. 당연히 스토리의 심각함도 반이 되지요.
더티 하리에게 하리만큼 큰 비중에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파트너가 붙어 있고 둘이 대충 쿵작쿵작 죽이 잘 맞는 사이라면 더티 하리의 무자비한 처벌들이 결코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의 폭력에 대한 광적 집착은 어느 순간부터 희극적인 것으로 떨어지겠지요. 모든 과도한 것들에는 희극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걸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는 건 극중 등장인물이 그걸 지적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티 하리는 스크린 위에서 왕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계급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관객도 당연히 그를 왕 취급했죠. 그리고 총 든 높은 양반들이 하는 일들은 늘 심각해 보이는 법 아닙니까?
<내일을 향해 쏴라>가 성공적인 버디 액션물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두 주인공은 살짝 경박하고 애교 넘치는 소악당들로 그렇게까지 진지한 사람들은 아니었거든요. 결국 버디 액션물은 심각한 액션을 코미디로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국내에서 히트한 <투캅스>도 예외는 아니죠. 다시 말해 이런 버디물은 <더티 하리> 식 진지한 액션에 숨통을 열어주는 방법으로 꽤 효율적입니다. 물론 브루스 윌리스처럼 액션과 코미디를 모두 해치우는 배우들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이게 편하지요. 만드는 사람들에게나 보는 사람들에게나요. 거꾸로 보면 <더티 하리>식의 심각하기만 한 폭력꾼은 더이상 관객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말이겠죠. 어느 순간부터 관객은 더티 하리를 코미디언으로 보고 있었던 겁니다. 관객의 세대가 바뀌었던 것이죠.
<리쎌웨폰> 시리즈에서는 오히려 그런 특성을 이용해 폭력장면을 늘렸습니다. 멜 깁슨은 더티 하리처럼 위험한 폭력 형사지만 대니 글로버와 함께 다니니까 어딘지 모르게 정신나간 어릿광대처럼 변했습니다. 어릿광대들이 저지르는 폭력은 괜히 덜 위험하고 덜 잔인해 보이는 법이고요. 게다가 온화한 대니 글로버의 캐릭터가 뒤를 돌봐주므로 살짝 더 위험해져도 되었죠. 덕택에 <리쎌웨폰> 시리즈는 말도 안 되는 폭력으로 주변에 시체를 뿌리고도 키들거리며 시치미를 뚝 떼는 영화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시리즈의 후반 작품들은요.
그런데 제가 지금까지 주절거렸던 이야기가 맞긴 한 걸까요? 신나게 떠들다가 과연 요새 할리우드영화에 이런 종류의 버디 액션물이 몇개나 되나 살펴봤는데, 지금 떠오르는 건 <러시아워> <리쎌웨폰> <맨 인 블랙> 정도에 불과합니다. 머리를 쥐어짜서 몇리개 더 추가할 수 있겠지만 이 정도로는 유행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만큼 대단한 숫자는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서운하군요. 그래도 예로 언급한 영화들에 대한 설명으로는 여전히 그럴싸하게 먹힐 수 있겠지요.듀나 djuna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