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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19세기의 브리짓 존스, 사랑에 빠지다
이다혜 2006-12-28

<미스 포터> LA 시사기

<미스 포터>는 포터가 그림책 계약을 맺고, 연달아 성공을 거두면서 워른과 사랑에 빠지는 1900년대 초의 ‘현재’와, 소녀 시절의 포터가 가족과 함께 아름다운 호숫가인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휴가를 보내고, 어린 동생에게 인형놀이를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던 1890년대 말의 ‘과거’를 교차해 보여준다. 특별한 굴곡이 없는 포터의 삶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함으로써 좀더 생기있고 다채로운 것이 되었다.

베아트릭스 포터는 영국의 그림책 작가다. <피터 래빗 이야기> <제미마 퍼들덕 이야기> 등 한국에 번역 소개된 작품만도 10권이 넘는 그녀의 그림책에는 토끼, 오리 등 흔히 볼 수 있는 앙증맞은 동물 캐릭터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미스 포터>는 그 베아트릭스 포터의 삶을 그린 영화다. 포터가 첫 그림책을 계약하고 성공을 거두고, 담당 편집자 워른과 사랑에 빠지는 일련의 과정을 <미스 포터>는 100년 전 영국을 배경으로 보여준다.

포터(르네 젤위거)는 부유한 집안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독신여성이다. 서른을 넘기고도 독신으로 살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길 좋아했다. 포터는 토끼 캐릭터인 피터 래빗을 주인공으로 한 그림책을 내려고 출판사를 찾아가는데, 시큰둥한 반응을 얻은 듯했지만 첫 책 출간에 성공한다. 포터의 담당 편집자는 노만 워른(이완 맥그리거). 형들이 운영하는 출판사에 갓 발을 디딘 그에게도 포터의 책이 처음으로 만드는 책이다. 포터의 동물 캐릭터들에 매료된 워른은 적극적으로 포터를 돕고, <피터 래빗 이야기>는 대성공을 거둔다. 워른은 포터를 독려해 계속 그림책 작업을 하게 하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포터의 부모는 워른과의 결혼을 격렬히 반대한다.

포터 역은 <브리짓 존스의 일기> 시리즈로 영국 독신녀 캐릭터를 능숙하게 소화한 르네 젤위거가 연기했다. 실존 인물이었던 포터가 그림책을 처음 냈던 나이가 이미 30대였던데다가 르네 젤위거가 그 역을 하게 되면서 베아트릭스 포터는 생동감있고 사랑스러운 독신녀로 그려졌다. 꼭 연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남자를 만날 때면 언제나 보호자를 대동하고 다녀야 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포터와 워른의 사랑이 싹트고 무르익는 과정은 은근하지만 해학적이다.

이미 <다운 위드 러브>에서 젤위거와 함께 연기한 적이 있는 이완 맥그리거는 포터와 사랑에 빠지는 편집자 워른으로 출연해 <미스 포터>에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불어넣는다. <브레이킹 더 웨이브> <펀치드렁크 러브>에 출연했던 에밀리 왓슨은 워른의 누이 밀리 워른으로 등장, 포터와 우정을 나누는 동시에 포터와 워른의 사랑을 독려한다. 1900년대 초반에 독신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베아트릭스 포터와 밀리 워른의 공감과 우정은, 이후 인생의 고난 앞에서 스러지지 않는 등불처럼 포터의 삶을 지탱해주기도 한다. 감독은 크리스 누난으로, <꼬마돼지 베이브>를 연출했던, 그 특유의 작고 귀엽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연출력을 <미스 포터>에 발휘했다.

<미스 포터>는 포터가 그림책 계약을 맺고, 연달아 성공을 거두면서 워른과 사랑에 빠지는 1900년대 초의 ‘현재’와, 소녀 시절의 포터가 가족과 함께 아름다운 호숫가인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휴가를 보내고, 어린 동생에게 인형놀이를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던 1890년대 말의 ‘과거’를 교차해 보여준다. 특별한 굴곡이 없는 포터의 삶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함으로써 좀더 생기있고 다채로운 것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미스 포터>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피터 래빗’ 캐릭터를 만든 작가의 삶을 그린 영화답게 포터의 작업 모습과 포터의 그림들을 자주 보여준다. 피터 래빗을 포함한 그녀의 캐릭터들은 포터의 붓끝에서 수채화로 채색되어 살아 움직이고 포터는 그들에게 말을 건다. 애니메이션으로 처리된 포터의 그림책 주인공들이 실사장면 안에서 장난치고 뛰어다니는 모습은, 그녀의 그림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입가에서도 웃음을 끌어낸다. 소녀 시절의 포터가 파티에 참석하는 부모님을 창밖으로 쳐다보았을 때, 부모님이 탄 마차가 토끼들이 끄는 마차로 변한 모습이나, 실의에 빠진 포터가 마구 구겨놓은 그림들 사이로 토끼, 오리 같은 캐릭터들이 온갖 동물 울음소리를 내며 부산하게 방 안을 돌아다니는 광경은 <미스 포터>의 가장 사랑스러운 장면들로 손꼽기게 부족함이 없다.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어도 시간의 때가 묻지 않은 레이크 디스트릭트 정경은 특수효과 처리를 한 게 아니라 실제 모습이다. 한적하고 정적이어서 보는 것만으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 같은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포터에게 영감을 준 곳이자, 삶에서 절망을 맛본 그녀가 다시 작품활동을 하며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을 준 곳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포터 집은 실제로 포터가 살았던 집에서 찍었다. 포터는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개발의 광풍에서 지키려고 지역의 토지를 다수 매입해, 77살에 죽을 때까지 7천 에이커에 달하는 인근 지역의 토지를 사들였다. 그녀는 그 땅을 내셔널 트러스트라는 자연, 문화 보호단체에 기증했고, 그 덕분에 그 지역은 지금까지도 포터 생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포터와 그녀의 앙증맞은 동물 캐릭터들은 1월25일에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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