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훔쳐보기 위한 도구라면 촬영은 렌즈를 통해 이 세상을 훔쳐보는 행위다. 이러한 훔쳐보기를 토대로 완성된 필름은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 상영되며 또 다른 훔쳐보기의 과정을 거친다. 관음(觀淫)을 주요 얼개로 삼은 <줌>은, 그러나 렌즈 혹은 필름 안에 대상을 가두는 것이 아이로니컬하게 자유를 열망하게 한다고 믿는다. ‘물고기는 컵 속의 신성한 액체를 그저 담고 있는 게 아니라 거대하고 유동적인 자유를 헤엄친다.’ 영화를 끝맺으며 수피즘을 대표하는 이란 시인 루미의 시구를 인용해 띄운 이유 역시 같은 믿음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인 듯싶다. 이 짧은 문장은 <줌>이 설파하는 100분가량의 주장을 간단명료하게 정리해 전달하는 키워드나 다름없다.
밀가루를 빌리려는 이웃마저 욕지기로 쫓아내는 무정한 이곳은 창녀를 실은 택시들이 거리를 휩쓰는 독일 베를린. 우울한 눈빛을 지닌 왈러(플로리안 루카스)는 루마니아 태생의 옆집 여인 완다(오아나 솔로몬)를 남몰래 뒤쫓으며 끊임없이 그녀의 발자취를 기록한다. 취업센터에서 알선해준 다섯 직장을 모조리 걷어찬 그는 콜걸인 완다와 손님들의 행위를 캠코더에 담은 뒤 남자들을 협박해 돈을 갈취한다. 완다에 대한 왈러의 집착에 못지않게 완다의 남편(데브라 메싱)이 휘두르는 폭력 역시 심각하다. 아들 빅터를 볼모로 삼은 남편은 완다에게 창녀로 일할 것을 종용하는가 하면 그녀를 때리거나 추행하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이후 완다가 남편의 강요로 콜걸이 됐다는 사실을 안 왈러는 그녀를 남편의 손아귀에서 건져내려 안간힘을 쓴다.
왈러의 카메라가 ‘줌아웃’된 익명의 사람들 가운데 유독 완다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녀의 삶을 ‘줌인’한 이유를 두고 <줌>은 사랑이라 일갈한다. “당신의 수호천사”란 변명을 앞세워 자신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왈러는 기실 강요하고 구속한다는 점에서 완다의 남편과 동전의 앞뒷면처럼 닮았다. 남편에게 맞서는 완다의 용기를 목격하고도 쉬이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은 이처럼 깨우침의 동기 자체가 호소력있게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줌>이 내뿜는 매력은 은근하고 우울한 초록색 화면과 그와 잘 어울리는 감각적인 음악에 있다. 패션 포토그래퍼 출신의 오토 알렉산데 야레이스 감독은 필름을 디지털로 스캔해 색보정을 한 다음 다시 필름으로 현상하는 작업을 거쳐 완성한 인상적인 화면을 통해 도시의 거칠고 삭막한 풍경을 효과적으로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