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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자식간의 피도 눈물도 없는 육탄전 <탕기>
오정연 2006-12-27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장 급진적인 주제를 끌어낸, 부모자식간의 피도 눈물도 없는 육탄전.

28살이 되도록 독립은 안중에도 없는 아들을 퇴치하기 위한 50대 부부의 사투를 다룬 영화, <탕기>가 시작하면 소제목이 깔린다. ‘비극의 서막.’ 만삭의 부인이 남편에게 병원에 가야 할 때임을 알리고, 병원에 도착한 부부는 예정일을 훌쩍 넘긴 아들과의 만남을 기다린다. 병원에서 남편이 지켜보던 TV에서는 가입국 추가로 확장된 EEC 시대를 알리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집으로 돌아온 부인은 갓난아기를 향해 속삭인다. “늙어 죽을 때까지 엄마 아빠랑 살자.” 여기서 퀴즈 하나. 진정한 비극의 서막은 무엇일까. 아이의 탄생 그 자체? 태어날 때부터 엄마 품을 떠나지 않으려던 아들의 기질? 만성 실업에 시달리게 된 유럽의 사회구조?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아붓는 부모의 태도? 고학력 실업자가 차고 넘친다는 점에서는 유사점이 있지만, 28살에 부모와 함께 산다는 것이 전혀 흠이 될 수 없는 2006년의 한국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관객이라면, 그 질문에 대한 영화 나름의 대답을 찾으려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가능할지는 자신할 수 없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의무와 관련한 민법에 의거하여, 자식을 쫓아내려는 부모와 나가지 않으려는 자식 사이에서 연간 900건 가까운 소송이 제기된다는 현대 프랑스 사회에서 힌트를 얻었고, 일종의 사회코미디로 분류될 만한 이 영화는 사회가 아닌 코미디에 방점을 찍기 때문이다. 박사논문을 마치면 중국 대학의 강사자리가 기다리고 있는 탕기(에릭 베르제)는 중국어에 일어까지 능통하고 각종 부업으로 연간 4천달러의 수입을 기록하는 고급 인력이다. 여자에게 인기 많고, 어른에게 공손하며, 별다른 정신적 문제도 없어 보이는 그의 유일한 결점은 부모의 집이 아니면 잠을 이룰 수 없다는 것. 부모가 새벽 5시에 방문 앞에 청소기를 틀어놓고, 상한 생선을 방 안에 놓아두고, 가위로 옷을 난도질해놓아도 성인군자처럼 반응하는 그는 흡사 아무리 죽여도 끄떡없는 좀비를 연상시킨다. 이유도 속내도 짐작할 수 없는 캐릭터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아들이 벌레보다도 싫지만 집을 사줘서 내보냈다가는 평생 보살펴야 할 거라고 여기는 아버지의 신념 등 유쾌한 문화 충격으로 다가오는 설정을 곳곳에 품은 이 영화는, 여전히 흥미로운 텍스트다. 무엇보다도 ‘가족이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지만, 모름지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만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엄청난 주제를 얼떨결에(?) 설파하고 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는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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