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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한 감정의 기복, 그 애매모호함
박혜명 2006-12-21

<9> 다미엔 라이스/ 워너뮤직 발매

영화 <클로저>의 삽입곡으로 다미엔 라이스의 <The Blower’s Daughter>가 주목받은 것은 그의 앨범 <O>가 발매되고도 2년 뒤였다. 이제 알 사람들은 알지만 다미엔 라이스의 솔로 데뷔앨범 <O>는 느리고 꾸준하게 인정을 받아 영지를 넓혔다. 그의 음악은 복잡하고 자극적인 사운드를 쓰지 않았다. 기타와 피아노, 첼로에 기초한 포크팝 사운드는 어떤 부재의 느낌을 선명히 하면서도 메마르지 않은 세계를 아담히 다져놓았다. 라이스의 섬세함과 지성은 실낱같은 잎맥 하나까지 손가락으로 감지할 것 같았고, 그것은 허약하거나 느끼하지 않아서 두고두고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4년 만에 나온 신보의 제목은 ‘9’이다. 애초에 라이스가 붙이려고 했던 건 ‘암탉 하나가 미수정란 위에 앉을 거예요’(A Hen Will Sit On An Unfertilized Egg), ‘넌 그녈 사랑해, 넌 네가 미워하는 그녀 모습들까지도 사랑해’(You Love Her, You Even Love Her The Shit You Hate About Her) 등이었다고 한다. 같은 한자라 해도 ‘O’는 다의적인 듯했지만 ‘9’은 애매모호하다. 자꾸 눈길을 끄는 건 레코드사에서 포기하도록 만든 라이스의 원제들이다. 결코 평온한 심정으로 쓰여지진 않았을 것 같은 두개의 문장은 이번 앨범 <9>의 전체적 정서를 함축한 말로 꽤 적당하다. <빌리지 보이스>가 리뷰에 쓴 것처럼 <9>의 노래들은 “꼭 나쁘게 헤어진 커플의 대화를 엿듣는 것마냥 감정적으로 매우 적나라하다(so naked emotionally).”

“Fuck You, fuck you, fuck you, fuck you!”(<Rootless Tree>) “Does he drive you wild? Or just mildly free?”(<Accidental Babies>) 라이스는 전례없이 거칠고 치사한 감정들을 써내려간다. 밥 딜런과 레너드 코언을 연상시키는 노래들과 <The Blower’s Daughter>의 후속곡 같은 트랙들이 한데 엮인 <9>은 감정이 격해져 있어 그 기복에 따라 말이 중구난방이 될 수밖에 없는, 상처받은 어떤 남자를 떠오르게 한다. 듀엣 타이틀곡 <9 crimes>의 멜로디와 가사에 깔린 감수성은 라이스가 자신의 ‘0’를 뛰어넘을 재능의 뮤지션임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이어지지 못하는 건, 그가 소포모어 징크스를 벗어나기 위해 이성적으로 계산하다 실패해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이 지금 아프기 때문이다. <O>와 같은 음악적 균형감각을 바란다면 <9>은 조절에 실패한 앨범이 틀림없다. 그러나 감정의 고통에 빠졌을 때 둔탁해지는 삶의 절절함이 그대로 와닿는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소통 가능한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