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름의 일부가 발견돼 화제를 모은 세계 최초의 장편영화 <켈리 갱 이야기>(The Story of the Kelly Gang)가 11월30일 호주 캔버라 국립영화아카이브(National Film and Sound Archive)에서 공개됐다. 1906년 호주에서 제작된 이 영화는 1880년대 호주 로빈 후드로 불렸던 네드 켈리의 영웅담을 그린 작품. 기존에 남아 있던 11분 분량의 조각 필름과 올해 초 우연히 발견된 7분짜리 필름을 이어 디지털 복구 작업을 거쳐 호주 영화역사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로 상영됐다.
1906년 12월26일 멜버른에서 첫 상영된 65~70분가량의 이 영화는, 찰스 타이트 감독이 제작비 2250호주달러를 들여 만든 최초의 블록버스터였다. 1880년 25살의 나이로 사형당한 악명 높은 갱 네드 켈리의 영웅담을 그린 이 영화는 개봉 이후 9년 동안 호주와 뉴질랜드, 영국을 돌며 놀라운 흥행성적을 거두었다. 또한 약자들의 영웅이었던 그의 범죄를 모방한 사건이 빈번히 일어나자 한동안 상영이 금지됐을 정도로 화제작이었다. 애초에 제작된 총 6개의 프린트는 세상을 떠돌다 행방이 묘연해져, 한동안 전설 속의 영화로만 기억되고 있었다. 단지 영화의 줄거리와 스틸 컷이 담긴 팸플릿과 포스터 그리고 신문 기사들만이 이 영화의 존재를 증명했다. 한 조각의 필름도 찾지 못하던 중 70년대에 들어 창고 쓰레기더미에서 혹은 개인 소장품 중 하나로 발견되기 시작했지만, 그 분량은 겨우 11분 남짓이었다. 그나마 손상 정도가 심해 작품의 질적 수준을 판가름하긴 어려웠다.
올해 2월, 호주의 국립영화아카이브 연구원 샐리 잭슨은 브리티시 아카이브의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던 중 우연히 <캘리 갱 이야기>의 참고자료를 발견하고, 창고를 뒤져 7분 분량의 연속된 필름을 찾아냈다. <ABC 뉴스> 인터뷰를 통해 그녀는 “483피트 분량의 필름을 손에 쥐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과연 1906년 필름인지 아니면 이후 제작된 다른 버전의 네드 켈리 영화인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분석 결과 필름 속 배우와 장면, 빌딩 등이 포스터 속 사진과 정확히 들어맞았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곧바로 국립영화도서관은 디지털 작업을 통해 색이 바래고 찢어진 필름들을 복구해 총 18분 분량의 필름을 완성했다.
새로 발견된 필름은 최초의 장편영화가 구현한 영화문법을 확인할 기회를 주었다. 특히 이 필름은 켈리가 철가면을 쓰고 경찰과 대치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이 어떻게 촬영됐는지를 보여주어 더욱 의미 깊다. 국립영화아카이브의 수석 큐레이터인 그레이엄 셜리는 “대부분의 장면이 극도로 사실적이어서 다큐멘터리에 가까워 보인다. 초기 영화들이 그렇듯 대부분의 화면을 고정된 카메라로 찍었지만 이 영화는 미디엄 숏과 클로즈업 사이에 와이드 숏을 적절히 배치시키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또한 새로 발견된 필름은 기존의 조각 필름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사라진 필름들의 내용이 무엇인지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됐다. 국립영화아카이브는 내년 초 복구한 필름과 각종 참고자료를 담은 연구용 DVD를 제작해 배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