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시작되고 꽤 한참 지나서야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영화인지 알게 된다. 이제 막 사회에 나가려는 발랄한 세 처녀와 우중충한 폴란드 거리 분위기가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화면들이 이어진 다음, 드디어 이야기의 초점은 마리올라에게 모아진다. 새로 사귄 연인 아처(라파엘 매코비치)와 독일로 밀월여행을 떠나려는 마리올라는 사랑의 기쁨에 들떠서 할머니의 걱정을 뒤로한 채 짐을 꾸리기에 바쁘다. 다정다감한 아처는 선물을 준비하고 디지털카메라로 마리올라의 사진을 찍어준다. 그런 아처의 달콤한 말과 행동으로 마리올라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다.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아이 낳고 행복하게 살기를 꿈꾸는 소박한 폴란드 처녀는 자기 앞에 기다리고 있는 현실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못하고 여행을 떠난다.
마리올라는 하룻밤 묵기 위해 찾아간 아처의 친구 집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끼기 시작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믿고 사랑하는 연인 아처는 순식간에 돌변하고, 다정했던 아처의 행동들이 마리올라를 옭아매는 덫으로 바뀌는 믿지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 마리올라는 저스틴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고 지금까지의 삶은 모두 잊어버릴 것을 강요받는다. 아파트에 홀로 남겨진 그녀는 자신이 텅 빈 건물 한가운데 갇혀 있고 주위에는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절망적인 현실을 알게 된다. <저스틴>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철저하게 폭력적인 상황에 직면한 한 인간이 겪는 고통에 대한 묘사이다. 마리올라는 3년이 지나서 겨우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저스틴으로 살았던 세월은 그녀를 영원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도록 만들어버린다.
폴란드, 룩셈부르크 합작영화인 <저스틴>은 독특한 동유럽영화의 분위기가 배어 있다. 진지하고 다소 무거운 분위기 속에 영상을 통한 심리묘사에 공을 들이면서, 흥미 위주로 흐를 수 있는 소재를 과장되지 않게 담담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한국의 <나쁜 남자>와도 일면 주제를 공유하고 있지만 전개양상은 사뭇 다르다. 순진한 어린 처녀에서 끔찍한 현실 속에서 몸부림치는 가련한 존재로, 거기서 다시 모든 일을 겪은 뒤 꿈이 없어진 여자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여자주인공 역을 맡은 안나 시에슬락은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오른다. 시나리오작가 출신인 프란코 드 페나 감독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저스틴>은 각종 유럽영화제에 출품되어 호평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