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가 괴롭다고? 어떤 연유로, 얼마나? 스즈키 유미코의 일본 만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거구의 칸나는 ‘칸나균’이라 불리며 더러운 세균 취급을 당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사람 살려! 또 끔찍한 하루가 시작되누나”라고 탄식부터 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추녀의 괴로움은 시작하자마자 증발이다. 칸나는 이미 큰돈을 들여 전신성형으로 재탄생한 뒤다. 만화의 공략 대상은 미녀의 몸과 추녀의 마음이라는 심신의 불일치에서 나오는 일종의 시행착오를 향해 있다. 미인의 마음가짐(가령, 사과하지 않는다, 돈을 내지 않는다, 귀기울이지 않는다, 줄을 서지 않는다 등등)이나 밀고 당기는 연애술을 미처 갖추지 못한 데서 나오는 좌충우돌이다. 48kg의 모델이 95kg의 레슬러처럼 움직이고 말할 때, 그건 일종의 슬랩스틱코미디가 된다. 칸나는 다양한 ‘슬랩스틱 시추에이션’을 거쳐 성형의 애초 목적이었던 짝사랑 남자를 사로잡기에 성공한다.
김아중의 한나 역시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원작 만화에선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성형변신 전의 거구 캐릭터에게 큰 역할을 부여했다. 수고스럽게 할리우드 특수분장팀을 공수했고, 매번 4시간의 가공 과정을 거치는 번거로움을 택했다. 왜 이런 노고가 필요했을까? 자신 또는 상대방에 대한 공격적인 비하에서 웃음을 찾는 코미디의 기본 법칙을 실감나게 작동시키기 위해서? 95kg의 김아중은 인기절정 미녀가수 아미(서윤)의 대창 가수다. 공연하는 아미의 무대 밑에서 얼굴없는 가수로 노래를 부르다가 흥에 겨워 춤을 추던 그가 건물 일부를 부수고 추락하는 바람에 콘서트가 일촉즉발의 위기에 빠지는 식의 슬랩스틱이 곳곳에서 튀어나오기는 한다. 또는 성형이라는 만인 조롱의 수단에 동정어린 이유를 보태기 위해서? 음반 프로듀서 상준(주진모)에 대한 불타는 연모가 웃음거리의 불씨가 되고, 단짝친구 정민(김현숙)조차 모든 여자를 명품, 진품, 반품으로 나누고 한나를 서슴없이 반품돼야 할 불량품 취급하는 저간의 사정은 불쌍한 95kg의 김아중이 전신성형을 택할 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김아중의 두 얼굴은 더 높은 승부수 혹은 다용도 엔터테이너를 희망한다. 그래서 등장하는 지원 사격들. 95kg의 한나가 가진 또 하나의 직업은 폰섹스 파트너다. 폰섹스란 소재는 대창 가수처럼 한나가 음지에서 얼굴없는 미녀로 살아가야 하는 인생역정의 하나, 그리고 전신성형의 값비싼 비용문제를 해결하기위한 방편의 하나이긴 한다. 이 소임만을 위해서 굳이 폰섹스를 등장시켰다면 이는 잔재미 강박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95kg의 한나가 몸과 마음이 온전치 못한, 요양원의 아버지(임현식)를 찾아가 주로 하는 일이 엄마 대역이 돼 춤을 추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딸의 엉덩이를 굳이 더듬거린다. 두번씩이나. 원작에 없는 이런 과잉 배치의 결정판은 48kg의 한나가 신인가수로 승승장구의 기세를 탄다는 점이다. 왜 본론인 상준과의 연애 게임에다 연예 산업의 게임 논리를 얹어놓았을까?
미녀 한나의 가장 큰 역경은 자신의 심신 불일치에서 오는 게 아니라 외부자의 심신 불일치에서 온다(만화처럼 48kg의 김아중이 95kg의 김아중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애교 슬랩스틱을 가끔 선사하기는 하지만). 뼈와 살을 발라낸 48g의 성형미인과 그 비밀을 이러저러하게 인지하게 된 남자친구와 팬들이 대답할 차례다. 예, 아니오 둘 중 하나. 그러니까 성형미인은 사랑받을 만한 가치를 지녔느냐, 아니냐에 관한 질문이다. 영화는 이 정면승부에 유쾌하게 다가가되 피해가거나 봉합하지 않는다.
여기서 성형은 개척과 도전의 비유에 가깝다. 전화선 너머의 육체를 멋대로 상상하며 즐기는 폰섹스 고객의 만족감이나 눈에 보이는 섹시 가수에 열광하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대창 가수의 멋진 노래를 소비하는 콘서트 관중의 즐거움이 뭐가 다르냐는 되물음이 느껴진다. 95kg의 한나가 아버지의 여인으로 순간 변신할 수 있는 건 전적으로 수요자(아버지)가 원해서다. 가짜라도 (서로 향유할 수 있다면) 괜찮아.
진정한 악인이 없어야 가능한 게임의 룰이긴 하다. 48kg의 김아중은 95kg의 심성을 잃지 않아야 하고, 발렌타인 30년을 오래도록 마시고 싶은 냉혹한 프로듀서 상준에게도 따뜻한 진심이 있어야 하며, 신의 손을 가진 성형의(이한위)나 조폭 같은 음반사 큰손들(김용건, 성동일)은 대세에 순응할 줄 알아야 한다. 스토커(박노식)나 라이벌 가수 아미 같은 장애물은 어느 순간 디딤돌이 돼야 한다. 김용화 감독은 이런 소탐대실의 가능성이 역력한 소품들을 모아모아 소탐대득의 잔치로 바꿔놓았다. 3억원의 비용과 1천여명의 보조출연자로 화려하고 실감나게 장식한 콘서트 풍광처럼. 코미디와 쇼로 범벅된 <미녀는 괴로워>는 디테일과 서사의 정면승부가 촘촘히 꿰어진 노출 의상처럼 시비걸기 어려운 섹시함을 자랑한다.
김아중의 매력이 만개한 건 마침 그가 고른 꽃밭이 좋아서일지 모른다. 이 영화의 맥락에 따르면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겠다. 김아중의 발견을 서로 기쁘게 향유하면 된다. 그의 연기가 어떤 성형과정을 거쳤든지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