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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고독과 비애 <황혼의 빛>

말없이 전달되는 인생의 고독과 비애, 그리고 희미하지만 꺼지지 않을 희망의 빛

영화관은 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가보지 못한 세상에 데려다주고, 현실에서는 해볼 수 없는 감정과 사건을 체험하게 해주는,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예술적 경험을 즐길 수 문화적 공간이다. 그런데 영화는 소비되는 지점에서는 서민과 가장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되는 수준에서는 가장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하면 영화는 소비의 측면에서는 복제 예술이라는 점 때문에 가장 많은 대중과 만날 수 있는 통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생산의 측면에서는 일단 제작되는 과정에서는 상당한 비용이 투자되어야 하고 더 많은 대중과 만나기 위해 실제에서 불가능한 꿈 혹은 달콤한 환상을 제공해야 하기에 대중의 현실과 멀리 떨어진 곳을 스크린 위에 담는다. 그래서 현실에 밀착된 우리의 삶을 담아내려는 감독들을 만나게 되면 오히려 반가운 마음이 들 지경이다. <황혼의 빛>의 아키 카우리스마키도 그런 감독의 명단에 빠져서는 안 될 이름이다.

켄 로치가 하층민의 삶을 사회운동 차원에서 전투적으로 다룬다면,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그것을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관조적으로 담아낸다. 그래서 켄 로치의 영화는 다소 직설적으로 관객에게 어떤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반면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를 보다보면 주인공의 삶이 직면한 절박함에 시나브로 물들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떠도는 구름> <과거가 없는 남자>에 이어 ‘빈민 3부작’의 마지막 편인 <황혼의 빛>에서도 동일한 정서적 체험을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대도시의 야간 경비원인 코이스티넨(얀 히티아이넨)이다. 그는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에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허름한 집에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금발의 여인 미리야(마리아 예르벤헬미)가 그에게 호감을 보이며 다가오고 꿈같은 데이트가 시작된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도 잠시, 미리야의 배후에는 코이스티넨이 경비를 도는 백화점 보석상을 노리는 범죄조직이 있었고, 그녀는 코이스티넨에게서 경보장치의 비밀번호와 열쇠를 훔쳐내 조직에 알려준다. 사랑의 단꿈에 빠져 있던 코이스티넨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절도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옥살이까지 하게 된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빈민 3부작’은 공통적으로 상실의 과정을 다룬다. 세 작품 모두 서사적 시간의 진행과 더불어 주인공은 무언가를 잃는다. <떠도는 구름>에서 주인공 부부는 평범한 직장과 소박한 가정이 있었지만, 실직으로 인해 경제적 위기에 처하고 가정까지 붕괴될 위험을 맞이한다. <과거가 없는 남자>의 주인공는 영화 초반에 모든 기억을 잃는다. <황혼의 빛>에서 코이스티넨도 (애초에 거짓된 것이기는 했지만) 사랑은 물론 직장과 집 그리고 전 재산까지 잃게 된다. 세편의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원래 가진 것도 별로 없는 서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부당하게 잃고 빈민화되는 과정은 신파적으로 소화될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만 감독은 관객이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삶에 동정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눈물 한번 흘리는 법 없고, 절규 한번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러한 사건들이 삶의 드라마틱한 순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버텨내야하는 오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삶에 투정부릴 정도로 유아적이지도 않고, 울며 나뒹굴 감정적, 시간적 여유도 별로 없다.

스스로를 ‘마음 따듯한 아저씨’라고 평하는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무언가를 계속 잃고 끊임없는 좌절을 경험해야 하는 주인공들에게 ‘희망’이라는 출구까지 닫아두지는 않는다. <떠도는 구름>의 부부는 실직한 뒤 번번이 취업에 실패하거나 어렵사리 구한 직장에서 월급을 떼어먹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꼼꼼하게 작성한 창업계획서가 자본문제로 폐기처분되기 직전 기적처럼 옛 직장 상사의 도움을 받아 ‘노동’(Work)이라는 레스토랑을 내게 된다. <과거가 없는 남자>의 남자는 기억과 함께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렸지만, 바닥부터 시작한 새로운 인생에서 사랑을 만난다. 점차 그에게 과거가 돌아오지만 그는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현재에서 인생의 답을 찾는다. <황혼의 빛>의 주인공 코이스티넨이 우울한 현실을 극복하는 방법은 꿈을 꾸는 것이다. 그는 직원들의 따돌림과 상사의 무시를 경험할 때마다 경비업체의 사장이 될 자신의 미래를 꿈꾼다. 금발 여인에게 농락당한 뒤 자신의 꿈을 지탱해줄 씨앗마저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을 때, 코이스티넨은 유일한 말동무이자 감옥에 간 그를 기다려준 아이라(마리아 헤이스카넨)에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관객이 그럴 만도 하다고 고개를 주억거릴 즈음, 그는 웃으며 농담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때 아이라가 던지는 한마디. ‘희망을 안 잃었다니 다행이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주인공들을 강하게 만드는 것, 그것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자꾸만 솟아나오는 희망이다. 그것이 <황혼의 빛>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소 모호하게 처리된 코이스티넨의 생사에 대해 눈으로 본 것보다 ‘여기서는 안 죽어’라는 그의 말을 믿고 싶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크 오몽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재현하는 집약체로 ‘얼굴’을 이야기한다. 얼굴은 자기 자신의 진실을 감추고 있는 가면인 동시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타자를 바라보는 장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에는 아무런 대사나 음악도 없이 인물의 얼굴을 정면으로 잡는 클로즈업이 많이 등장한다. <황혼의 빛>에서도 예외가 아닌데, 우리는 고독하게 살아가는 코이스티넨의 무표정한 얼굴을 수시로 마주해야만 한다. 아무리 억울한 상황에서도 변명 한마디없이, 부당한 현실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견뎌내는 삶의 태도가 그의 담담한 얼굴표정을 통해 끊임없이 상기된다. 감독은 구구절절한 설명이나 설득의 과정을 생략하지만 화면을 가득 메운 얼굴은 관객에게 인물의 영혼과 바로 접속하게 만들고 동시에 그러한 삶의 논리가 지배하는 하나의 우주를 만나게 된다. 이 영화는 코이스티넨뿐 아니라 미리야의 얼굴에도 많은 시간을 허용하는데, 그것은 남자를 수렁으로 몰아넣는 일종의 팜므파탈인 그녀를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뭔가 끊임없이 망설이고 주저하는 듯한 그녀의 얼굴은 그녀의 악행 뒤에 숨겨진 사연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운동이 정지되거나 청각적으로 음이 소거된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템포 빠른 영화에 익숙한 관객에게 인물의 얼굴만 멀뚱멀뚱 들여다보라는 감독의 요구가 때때로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황혼의 빛>은 말없는 얼굴이 쏟아지는 대사보다 더 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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