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들이 군생활 할 때 일이다. 신병교육대 훈련이나 유격훈련에서 ‘빡세게’ 구르고 나면 조교들이 꼭 <어머니 마음>를 부르게 했단다. 녹초가 된 상태에서 떠올리는 어머니만큼 몸과 마음의 저항감을 무화시키는 게 있을까. ‘그러니까 딴생각 말고 조교 원망은 더더욱 말고 어머니 생각해서 고분고분해지자’는 ‘자습 효과’를 노린 일종의 ‘길들이기 전술’이었던 거 같다. 재미있는 건 부르다보면 가사가 늘 <스승의 은혜>로 바뀐다는 것. “…손발이 다아 닳도록 고오오생하시네” 대목에 이어 “아아아 고마워라 스승에 사랑…”으로 넘어가곤 했단다. 음이 비슷해서인지(정말 스승의 은혜가 고마워서는 아닐 테고) 관성 때문인지 다수가 그렇게 불렀는데, 뒤늦게 ‘어, 아닌데’ 싶은 사람도 결국 눈물콧물 짜내며 목이 터져라 어머니와 스승을 이어 불렀고, 이 장면은 요즘도 종종 연출된단다.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이나 교육양극화가 두드러지는 지금이나 ‘공부 잘해 효도하자’는 구호는 변함이 없다. 자식의 성적은 곧 부모의 성적이니, 서울 강남 대치동에 도는 “돈 많은 여자가 예쁜 여자 못 따라가고, 예쁜 여자가 자식 공부 잘하는 여자 못 따라간다” 유행어가 엉뚱하지만은 않다. 문제는 비뚤어진 자식사랑 때문에 공정경쟁의 ‘다국적 룰’까지 마구 깨고 있다는 거다. 일부 외국어고에서 유학반 학생들의 내신성적을 학부모들의 요구에 따라 조직적으로 부풀려온 사실이 확인됐다. 학부모들이 멋대로 산정한 기준에 따라 100점 만점에 70점대 받은 점수도 영문 성적표에는 A로 기재해줬다니, 부동산 값 폭등에 버금가는 성적 폭등이다.
궁금한 게 있다. 미국 대학에 넣으려고 공문서 위변조를 요구하고 이에 공모한 부모와 스승의 행태를 애들은 몰랐을까? 훗날 이런 유의 ‘은혜’에도 눈물콧물 짜며 “아아아 보답하리…” 할 수 있을까?(참, 대부분 병역은 면제되려나? 근데 영어로는 어떻게 부르지?) 다른 나라 대학입학 제도까지 뒤흔드는 ‘나비효과’를 낳는 교육경쟁 혹은 경쟁교육은,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보편적 정서까지도 조작·변형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