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판 키드의 추억> 신현준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파일로 저장돼 액정화면 숫자로 표기되는 요즈음 음악은, 간혹 들을 수는 있되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유령 같다. “소프트웨어가 보이지 않는 경지”에 이르면서 음악의 물성(物性)은 희미해졌다. 묵직한 포터블 라디오를 져나르느라 어깨가 처지고, LP판의 소리골을 닦고, 손수 녹음한 카세트테이프에 곡목을 꼭꼭 눌러쓰던 세대가 기억하는 음악의 촉감과 무게는 멀어져가고 있다(물론 컬러링과 MP3로 음악을 습득한 세대의 몸은 나름의 방식으로 음악을 새길 것이다).
<빽판 키드의 추억>은 촉감과 노이즈가 살아 있는, 한 40대 평론가의 음악 편력기다. 팬에서 출발해 애호가를 거쳐 평론과 연구를 업으로 삼은 저자는 다시 ‘팬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경지에 이르러 이 책을 썼다. <쇼쇼쇼> 무대에 매혹되고, 식구들의 비협조와 싸우며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녹음하고, 통과의례처럼 통기타를 독학한 저자의 소년기가 책을 연다. 음악과 저자의 인연은 길고 질기고 굴곡도 많다. 기존 대중문화가 ‘진정한’ 민중문화의 걸림돌로 여겨지던 1980년대에 대학 생활을 한 저자는 10대 때 수집한 음반을 보따리째 처분하는 절교를 감행하기도 했다. 이 음악적 자서전은 주관적으로 구술된 문화사이기도 하다. 예컨대 당대 중고생들의 소풍 필수품인 휴대용 오디오 ‘야전’에 관해 저자는 “라이브 전성기와 노래방 전성기 사이의 과도적 현상”이라는 정의보다 한층 재미난 통찰을 선사한다. “플레이어 자체가 무거웠을 뿐만 아니라 건전지를 24개 정도 준비하려면 그 무게만도 만만치 않았는데, 그걸 보면 춤을 추는 행위는 그만한 수고를 하고서라도 기어이 해야만 하는 절박한 ‘무엇’이었음에 틀림없다.”
한때 ‘빽판’ 수집에 용돈을 탕진하고 동네 판 가게에서 고수들과 음악을 논해본 중년 독자에게 이 책은 마치 <콘서트 7080>과 비슷한 효과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향수(鄕愁)에 몸을 내맡기기에는 너무 신중하고 내면 검열이 강하다. 쌀쌀맞은 듯 수줍은 문체도 여전하다. 뒤표지의 “비록 후진 오디오에 빽판일지라도 음악이 있어 내 삶은 행복했다”는 훈훈한 카피는 본문과 거의 무관하다. 저자의 회고담은 대중음악의 역사와 현재에 관련된 이슈를 자주 불러내 독자에게 생각 거리를 던진다. 이를테면 어눌한 초기 스트리밍 오디오에서 옛날 AM 라디오의 소리를 떠올린 저자가 “음질이 좋지 않을수록 현혹의 작용은 작아지고 음악의 뼈대가 선명히 드러나는 장점이 존재한다”라고 쓸 때, 사적인 경험과 보편성을 자연스럽게 연타하는 이 책의 묘미는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