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12월9일(토) 밤 11시
<로제타>의 가난한 로제타는 일자리를 잡기 위해 친구를 배신한다. <아들>의 아버지는 아들을 죽인 소년에게 접근하며 복수를 생각한다. <더 차일드>의 청년은 자신의 차일드를 물건처럼 팔아버린다. 그리고 <약속>의 소년은 불법 이민자인 흑인 남자가 죽기 직전, 자신과 맺은 약속을 짊어진다. 다르덴 형제는 제목 그대로 영화를 찍는다. 그러나 이 단순한 제목들을 통과하기 위해서, 주인공들은 지난한 고통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낭만도 냉소도 없는, 말 그대로 존재 앞에 던져진 시간. 다르덴 형제는 핸드헬드로 인물들에 밀착함으로써 시간과 인물 사이에 환상이 개입할 여지를 두지 않는다. 그 흔한 음악도 없다. 오직 인물들의 가파른 숨소리와 무정한 외부 세계의 울림만이 있다. 주인공들이 맨몸으로 그 시간을 견뎌내며 마침내 어떤 선택에 이를 때까지 관객 역시 객관적 관찰자의 위치로 도망갈 수 없다. 그것이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보는 법이다.
<로제타>에서 배신당한 친구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야 마는 로제타의 손을 잡아주고 <아들>의 아버지는 그저 소년일 뿐인 아들의 살인범에게 복수를 하지 않는다. <더 차일드>의 청년은 차일드를 되찾은 대가로 감옥에 갈지언정 더이상 누군가를 배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약속>의 소년은 약속을 지킨다. 이들은 냉정한 세상에 끝없이 떠밀려가는 듯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반드시 선택을 하고 있다. 그 선택이 그들에게는 최선의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것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윤리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르덴 형제의 영화들에 덧붙여지는 설명들, 예컨대 용서, 화해, 구원 같은 메시지는 어쩌면 부차적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영화에서 가장 아픈 건, (그들의 표현처럼) 계급에서조차 비껴난 “탈계급화된” 존재들이 벼랑 끝에서도 자기를 내버리지 않고 보여주는 선택이라는 행위 그 자체다.
1996년작인 <약속>은 다르덴 형제만의 영화적 스타일과 사유의 시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로제타> <아들> <더 차일드>의 원형이라고 할 만하다. <약속>에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흑인 여자와 아이를 돕는 이고르는 <더 차일드>에서 주인공 브뤼노를 연기한 제레미 레니에의 어린 시절이다. <아들>의 고뇌하는 아버지 역할로 출연했던 올리비에 구르메는 다르덴 형제의 페르소나답게 <약속>에서도 불법 이민자를 밀입국시키는 이고르의 아버지를 연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