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기자 채용 공고를 냈더니 입사서류 500여통이 도착했다. 서류심사를 거쳐 이번주에 필기시험을 봤고 이제 면접만 남았다. 2명을 뽑을 예정이니 경쟁률로 치면 250:1쯤 되겠다. 아직까진 내가 왜 떨어졌냐는 질문이 많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궁금할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씨네21>이 기자를 뽑을 때 기준으로 삼는 게 무엇인지를 말이다. 사실, 입사서류 500여통을 꼼꼼히 보는 것은 안구에 통증을 동반하는 일이다. 학벌이나 학점을 기준으로 삼지 않으므로 오직 지원자가 쓴 글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데 비슷한 내용의 글을 계속 읽다보면 어지럼증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다 눈이 번쩍 띄는 순간이 있다. 형식이든 내용이든 남다른 비범함이 엿보이는 경우다. 1차 서류전형 합격자는 이런 과정을 통해 가려졌다.
입사서류에는 자기소개서를 쓰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글솜씨를 평가의 우선적 기준으로 삼는다는 걸 몰라서인지 의외로 많은 지원자들이 자기를 소개하는 글을 성의없이 쓴다. 대표적인 예는 1. 성장과정 2. 성격의 장단점 3. 특기사항 4. 지원동기 5. 입사 뒤 포부 같은 틀에 맞춘 글이다. 다른 기업에서 사람을 뽑을 때는 이런 식의 자기소개서가 무난하겠으나 <씨네21> 기자로는 적당치 않다. 남이 만든 공식에 집어넣어 작성한 자기소개는 자신의 사고방식이 고루하고 창의성이 부족하다고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런 글은 읽고나도 도무지 지원자의 개성을 파악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성장과정은 2남1녀 중 장녀라 책임감이 강하거나 1남2녀 중 막내라 언니, 누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식이다. 혈액형이 A형이라 예민하고 O형이라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데 그런 식으로 사람을 구분하자면 세상은 A, B, AB, O 또는 장남, 장녀, 차남, 차녀, 막내 등 딱 몇 가지 타입의 사람만 존재할 것이다. 정말 이런 분류가 자신에 관한 가장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성격의 장단점이란 것도 그렇다. 나는 성격파탄자요, 라고 말할 게 아닌 다음에야 자기 입으로 말하는 장단점이란 게 그리 믿을 만한 정보가 아니다. 읽어도 성격을 알기 힘들 게 뻔하기 때문에 자기소개서에 적힌 성격의 장단점은 대체로 읽지 않는 대목이 된다. 그리 많은 분량도 아닌 자기소개서에서 읽히지 않을 정보를 적는 지원자라면 알찬 기사를 쓰리라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입사지원 서류는 자기소개서와 함께 영화에 관한 글을 제출하도록 하는데 이것도 일종의 자기소개서라고 보면 된다. 영화잡지 기자를 하겠다는 자신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영화에 대한 식견과 애정만큼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자신의 블로그에 썼던 메모 같은 글을 제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그것으로 자신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아니라는 답이 금방 나올 게다. 글을 써서 먹고살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소개서든 영화에 관한 글이든 개성 넘치는 기사나 에세이로서 완결성을 갖춰 써보는 게 필요할 것이다.
다음주엔 새로운 기자 2명을 뽑게 된다. 이 말은 지금까지 일했던 2명의 기자가 <씨네21>을 떠난다는 뜻도 된다. 재기 넘치는 문장으로 사랑받던 이종도 기자는 아예 기자 접고 영화감독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의 글을 볼 수 없어 아쉽지만 <씨네21> 기자 출신 감독이 생기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ME>를 전담하느라 <씨네21> 지면에 자주 등장하지 못했으나 은근히 웃기는 문체의 소유자 김나형 기자는 다음달부터 방송국 라디오 PD가 된다. 농담삼아 영월로 좌천되진 말아야 할 텐데, 라고 말했지만 음악을 무지 좋아하는 그의 취향에 맞는 좋은 프로그램을 선보일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취재대상자가 되어 <씨네21> 지면을 장식할 것을 상상하니 빈자리의 아쉬움이 좀 덜어지는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