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사업가인 잭(스티븐 시걸)은 장인 조지와 외동딸 아만다와 함께 죽은 아내가 태어난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로 여행을 간다. 공항에 도착한 그 앞에 첩보원 시절 동료였던 해리가 느닷없이 나타나고, 조지가 타고 있던 리무진이 폭발한다. 혼란을 틈타 전직 비밀첩보원 택시기사 애냐(에바 포프)는 아만다를 납치해 사라진다. 잭은 딸을 찾아다니면서 이 모든 일이 조지가 훔쳐낸 생화학무기 MK 울트라 프로그램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국과 적국 모두를 믿지 못하게 된 잭은 낯선 부쿠레슈티를 헤매면서 홀로 아만다를 되찾고자 한다.
1951년생이니 스티븐 시걸도 어느새 50대 중반이 되었다. 아무리 ‘사부’라고 불리는 가라테 전문 액션배우라고 할지라도, 이르면 할아버지도 되었을 나이에, 젊은 시절처럼 몸으로만 승부하기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리하여 스티븐 시걸은 총을 들었다. 일단 총은 들었지만 제대로 뛰지도 않고 걸어다닌다. 민첩하고 은밀한 그림자가 떠오르는 제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쉐도우맨>은 손목을 비틀어 총을 뺏는 동작조차 한없이 느리기만한 스티븐 시걸을 인내해야만 하는 영화다. 이따금 <캅랜드> <블러드 워크>처럼 노쇠한 액션스타에게 향수와 연민을 표하는 영화가 있기는 했지만 그 영화들엔 조준도 하지 않고 사격을 퍼붓는 성의없는 조연들은 나오지 않았다.
스티븐 시걸이 각본까지 참여한 <쉐도우맨>은 그리 낯설지 않은 스토리임에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힘든 영화다. MK 울트라 프로그램을 노리는 이들은 많은데, 미국 대사는 사고가 터질 때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유의 대사만 되풀이하고, 끝내는 잭에게 혼자 알아서 하라고 해버린다. 그 프로그램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유일한 열쇠인 잭에게 총탄을 퍼붓는 행동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잭은 부쿠레슈티 암흑가를 뒤집는, 걸어다니는 50대로서는 꽤나 힘든 일을 해내는데도, 거기엔 특별한 목적이 없다. <쉐도우맨>은 비디오용으로 제작된 영화이기 때문에 이처럼 허술해도 괜찮다는 것일까. 마지막에 이르러 초능력에 가까운 경지로 기(氣) 공격을 내뿜는 스티븐 시걸은 자신이 어떤 이유로 스타가 되었는지 잊은 듯하다. 관객은 그가 그저 스티븐 시걸이기 때문에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사랑은 이기적인데, 스티븐 시걸은 주는 것없이 사랑만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