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정신병원. 이곳에 살고 있는 환자 차영군(임수정)과 박일순(정지훈)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주인공들이다. 차영군은 자신이 인간이 아닌 온갖 사물과 대화하는 능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밥이 아닌 건전지의 에너지를 먹으며 삶을 연명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사이보그라고 생각한다. 박일순은 언제 자기의 존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가면쓰기를 즐겨하며, 한편으론 물질이든 정신이든 남의 것 ‘무엇이라도’ 훔쳐낼 수 있다고 착각한다. 정신병원에 살고 있는 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다. 차영군은 자기가 사이보그라고 생각하고, 박일순은 그녀가 사이보그라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정상인들이 보면 망상이고 비현실적이지만, 분열증적이며 독자적인 세계를 지닌 두 당사자들에게는 절박하고 현실적인 세계다. 그런 각자의 우주가 서로 통하는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했다. 사랑이라 부르는 것의 또 다른 면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에 정신분열증과 로맨스가 만나게 된 것”이라고 감독은 이 영화의 출발을 밝힌 바 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이 글을 쓰는 현재 시점까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보지 않은 작품에 관해 품평을 하는 건 헛소리가 되기 쉽다. 다만 복수 3부작과 비교할 때 표현의 ‘수위’ 내지 내용의 ‘강도’가 다소 낮아질 것임을 예상하는 것 정도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듯한 요소를 절합하고자 하는 호기심과 시도는 원래부터 박찬욱 영화의 욕망이기 때문에 정신분열증과 로맨스가 만나 만들어낼 스타일, 그것이 이 영화를 예외적으로 보이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다. 때문에, “믿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 영화가 맞다”는 감독의 장난섞인 언급은 영화적 스타일의 ‘근본적’ 변화에 주목해 달라는 부탁이기보다 박찬욱식 소품 영화에 맞춰 발생한 12세 관람가의 ‘일시적’ 온순함에 적응해 달라는 언질일 것이다.
“신세계 정신병원은 하나의 세계, 일종의 커다란 유치원입니다. 또한, 환자들의 망상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우주입니다. 그 우주들이 온통 뒤죽박죽 섞이는 대소동이 벌어집니다. 실제 병원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 일종의 기적입니다. 이 기적을 이루게 한 힘은 ‘공감’이고 ‘동정심’이었죠”라고 감독은 말한다. 그러면서 이 영화가 두 사람의 “소꿉놀이”라고도 요약한다.
소꿉놀이는 역할의 흉내와 분담을 통해 아이들이 벌이는 ‘어른놀이’이자, 사회적 관계에 대한 임시적 예행연습이다. 그러니 박찬욱의 영화로 칠 때 가장 어린 주인공들, 게다가 착란적인 각자의 폐쇄적 우주에 사는 그들이 ‘어른놀이’를 통해 어떻게 사회적 관계맺음의 설정 안으로 들어설지, 그것이 어떻게 표현될지가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