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루(구보즈카 요스케)는 스무살. 어렸을 때 맨홀에 빠져 머리에 상처가 있다. 사람들에 의하면 뇌에도 상처가 있다고 한다. 덕분에 스무살 테루는 아직도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다. 아침마다 할머니의 ‘코인 론드리’(무인 세탁소) 문을 열고, 누군가가 여자 속옷을 훔치지 않는지 지키는 것이 테루의 일. 자신을 ‘나쁜 사람들에게서 지구를 지키는 경찰대 대장’으로 여기고 있지만, 기실 그의 공간은 별다른 사건이 일어날 리 없는, 평범하고 조용한 공간이다. 매일 들르는 손님들이 매일의 사소한 일을 중얼거리며 그날의 빨래를 수습해가면, 언제나처럼 안온한 밤이 찾아든다. 그런 공간에 미즈에(고유키)라는 이름의 여자 손님이 온다. 슬픈 얼굴로 담배를 피우고, 마음을 어딘가에 두고 왔는지 매번 빨래 하나씩을 잊고 간다. 그녀의 빨래를 돌려주러간 테루의 마음엔 미묘한 파장이 인다.
동화같이 잔잔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일본영화의 장기다. 어른도 아이도 아닌 스무살 남자가 주인공인 <란도리>도 그렇다. 일본 소도시의 풍경 위로 담담히 펼쳐지는 사람들의 일상은, 평범해서 외려 몽롱하다. 그러나 <란도리>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세상을 떠난 아내가 생전의 기억을 잊은 채 여름 한철을 보내러 돌아오는) 같은 ‘예쁜 요정 이야기’는 아니다. <란도리>를 지배하는 정서는 상처와 슬픔이다. 별볼일없는 이들의 마음에 깃든, 상실의 감정이다.
테루는 엄마가 했던 말이라며 이런 얘길 한다. 세상엔 일이 잘되는 사람이 있고, 잘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테루네 ‘란도리’(Laundry)에 들르는 사람들은 대개 후자에 속한다. 젊은 복서는 경기에서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고, 백발의 노인은 며느리가 더럽다고 빨아주지 않는 자신의 속옷을 매일 손수 빤다. 미즈에는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받은 뒤부터 물건을 훔치는 병이 생겼다. 테루는 남들만큼 세상을 알지 못하지만, 근처 공장 가스탱크를 바라보며 그 괴물이 점점 부풀어 오른다고 생각한다. 삶에 드리워진 막연한 불안은 언젠가 터져 모든 것을 끝장낼 것 같다.
<란도리>의 미덕은, 그를 감추려하지도, 비관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테루가 머리에 상처를 갖고 있듯 인간은 모두 상처를 품고 있다. 남들의 눈엔 작은 흠일 뿐인 그 구멍은, 때로 한 인간을 삼켜버릴 만큼 위협적으로 돌변한다. 그럴 때 불완전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불완전한 인간과 꼭 껴안는 것이다. 테루의 말처럼. 둘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단순하고 사소한 지령은, 테루에 투영된 구보즈카 요스케의 모습만큼이나 따뜻함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