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2월 한국 극장은 새로운 영국 영웅을 맞이할 예정이다. 제임스 본드가 보통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양로원에서 마티니를 홀짝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새로운 세대마다 새로운 얼굴을 선보이고 있다. 가장 최근의 본드인 대니얼 크레이그는 요즘 젊은 관객에게 호소할 만한 좀더 거칠고 좀더 상처받기 쉬운 이미지를 투사할 것이다.
이 우아하고 치명적이며 매력적인 환상의 인물은 실제 영국 스파이들과는 공통점이 적을지 모르지만, 44년 동안 21편의 영화를 만들어냈으며 40억달러가량의 영화티켓을 팔아치웠다. 미국도 적지 않게 영웅들을 만들어냈다. 1930년대에 처음 탄생한 슈퍼맨, 레이건 시절의 초강력 남성 판타지 인물인 람보(불행하게도 2008년에 돌아올 예정임), 그리고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는 개인적으로 필자가 선택한 가장 흥미롭고 매력 넘친다고 생각되는 미국 영웅이다.
아시아 영웅으로는, 초기 오우삼 영화에 출연했던 주윤발의 인물들이 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인물들이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모두 똑같은 특징적인 영웅이다. 좀더 희극적인 차원에서 일본은 <남자는 괴로워>를 통해 영화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져왔던 영웅을 만들었다. 1969년부터 1996년 죽을 때까지 배우 아쓰미 기요시는 원작과 47편의 속편에서 같은 인물을 연기했다.
진정한 프랜차이즈의 징표는 영화 자체보다 영웅이 더 흥미롭다는 데 있다(<캐리비안의 해적>이 분명 이 경우에 해당하고 본드 영화들 대부분도 그렇다). 이같이 카리스마 있는 영웅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영화사들은 패를 제대로 치기만 한다면 수년간 히트하는 영화들을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영웅들은 어떤가? 대부분의 한국영화들은 한명의 강한 인물의 성격보다는 흥미로운 상황들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것 같다. 중국인들이 한국 하면 가장 많이 연상하게 되는 것들로 김치나 태권도와 더불어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를 지명하는 것을 보면 엽기녀를 가장 기억에 남을 한국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엽기녀가 프랜차이즈화될 수 있었을까?
분명 <올드보이>의 오대수는 기억에 남을 카리스마 강한 영웅의 자질이 있다. 그렇지만 그 영화를 프랜차이즈로 만들기 어려운 것이, 캐릭터의 결정적 측면 중 하나가 영화 마지막에 해결되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올드보이>와 같이 감독 중심인 작품 속편을 시도하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다(논의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괴물> 또한 그럴 것이다).
한국에는 워낙 훌륭한 성격 배우들이 많아서 정말로 기억에 남을 만한 카리스마 있는 영웅을 창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자는 괴로워>를 볼 때면 송강호나 오달수 같은 배우들이 유사한 역할에서 지지 않고 웃겨줄 거라는 상상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한국 영화사에서 그 영화의 리메이크를 고려하면 좋을 것 같다). 만약 한국이 제임스 본드나 주윤발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조승우나 황정민이 훌륭한 카리스마 있는 액션 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유명한 영화 영웅들은 시대 분위기의 양상들을 포착하거나 그 불안감에 목소리를 내주는 것 같다. 한국사회는 지금 반영웅 편향으로 기울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좋은 일이리라. 그래도 미래의 어느 시점에 상징적인 한국 영웅의 출현을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그 인물은 어떤 형상을 취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