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목은 큰 나무만 다루지만 대목은 작은 나뭇가지도 버리지 않는다, 고 한때 전북지역 운동권 맏형이었고 지금은 국회의원인 이강철 열린우리당 의원이 말한 바 있다. 난 지역운동을 취재 중이었고 다른 건 까먹어도 그 말만큼은 여운이 남았다. 9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 소나기에 운동권도 흠뻑 젖을 때였다.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밥해먹다가 쓱 입닦고 나와 인터뷰에 응하던 ‘아우라’가 더해져서 그랬을까. 티나고 잘난 것을 좇던 인사들(작은 목수)이 떠나도 세상에는 보듬고 살펴야 할 일이 많으며 소리도 소문도 없이 그 일을 하는 이들이 진짜 운동가(큰 목수)라는 뜻으로 들렸다. 열린우리당의 적지 않은 의원들이 그와 같은 출신배경을 갖고 있을 텐데, 왜 더이상 사회적 약자의 울부짖음에 귀기울이지 않(아 보이)는 것일까. 그들이 변했나, 내가 변했나.
조류 인플루엔자의 확산으로 양계농가에 비상이 걸렸고, 반FTA 시위는 절규로 바뀌고 있으며,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 법사위 의결도 없이 본회의에 올라 갑자기 사이가 좋아진 거대 야당과 여당의 비호 속에 전격 처리됐다. 대통령이 승부수인지, 자살암시인지 모를 “임기를 마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 운운한 직후다. 대통령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임명을 철회하며 “정치권에 굴복했다”고 했다. “신당은 지역당”이라면서 당을 지키겠다고 비장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 사이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신당 판짜기에 골몰한다. 다들 땅에서 10㎝쯤 떠 있는 것 같다. 정작 국민들이 먹고사는 일에는 대범하면서 정치적 자존심과 관련해서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대통령을 가져서일까. 조류 인플루엔자의 발생·확산 원인을 ‘말 못하는 철새’에게 돌리듯, 한때는 열혈청년이었을 상당수 여당 인사들의 무력함과 탐욕도 그 무엇에 돌리고 싶다.
날이 추워졌다. 오늘 내가 사는 도시에는 눈이 오랫동안 내렸다. 눈을 보며 낭만을 노래할 사람이 있고 생업을 걱정할 사람이 있다. 대의와 명분은 오래 가지 못한다.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생존’이다. 기왕이면 품위있는 생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