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 2000년대 조폭영화가 자리잡은 이후 올해는 조폭영화가 조폭코미디에서 벗어나 리얼리티에 좀더 근접한 한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자리는 조폭영화의 진화와 매력적인 남성 캐릭터를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저 이상식과 나편견 평론가가 함께 진행합니다.
나편견 쟁쟁한 후보들과 조연들, 자리 함께하셨습니다. 후보작들은 웬만한 영화 아니면 명함도 못 내밀 만큼 쟁쟁합니다. <거룩한 계보> <달콤한 인생> <역도산>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열혈남아> <주먹이 운다> <친구> <태풍>….
공로상 - <역도산>
이상식 먼저 공로상 부문입니다. 캐릭터 가운데 가장 연로한 역도산! 축하드립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역도산이 곱슬머리를 양손으로 만지며, 흰 턱시도 차림으로 올라오는데 배에 피가 스며나온다.) 역도산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싶다면 프로레슬링 티켓부터 사십시오. 하하하. 전 스모할 때 선배들에게 맞으면서도 절대 도망을 안 갔습니다. 마음껏 웃으며 살겠단 꿈이 있었습니다. 하천에서 울면서 군가를 불러 칸노 회장을 감격시킨 장면 기억나시죠. 선배를 시켜서 꾸민 자작극입니다. 웃으며 살아야 하니까. 성공이라는 명분으로 아내인 아야에게 헌신하기는커녕 헌신짝처럼 대했습니다. 성공한 뒤에는 대놓고 바람도 피웠죠. 남자가 그런 맛이 있어야죠. 동료 이무라가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는 은인인 칸노 회장의 뜻은 생각도 하지 않고 아주 짓밟아주었습니다. 한번뿐인 인생, 착한 척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링에서 만납시다.
(방청석에서 아야가 혼잣말을 한다.) 칼에 찔려서도 허세를 부리네. 공로상이 아니라 허세상이네. 아냐, 울음상이지. 군가를 부르면서도 울고, 상투 자르면서도 울고. 우리 엄마가… 어쩌고 하면서. 아니, 효성상인가. 바람둥이! 무책임한 빠가야로!
이상식 네, 한국인의 기개를 떨친 역도산, 남자의 외로움, 강한 자의 외로움이 느껴지는 캐릭터였죠.
모던 조폭상 - <달콤한 인생>
나편견 최근 건달들이 모던화되고 있는데 새로운 시대의 협객상이 나타났죠. 신설된 모던 조폭상입니다.
이상식 네, 경쟁이 치열합니다. 수상작은… <달콤한 인생>의 김선우 실장!
(김선우 실장이 한손으로 휴대폰 통화를 하며, 다른 손으로 핸드커프스를 매만지며 단상에 올라온다.) 셋 셀 동안 양아치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주십시오. 하나, 둘… 하하. 죄송합니다. 전 호텔에서 일합니다. 양아치가 아닙니다. 제가 상을 받은 건 동료 문 실장 얘기대로 끝까지 멋있어지려고 한 덕분입니다. 백 사장이 거래 트려고 들어왔을 때, 문 실장이 나한테 이래도 되냐고 했을 때 그렇게 해도 된다고 했죠. 삼선굔지 삼신굔지가 찾아와서 잘.못.했.음 네 마디만 하라고 해서 그.냥.가.라 했죠. 전 맥주도 기네스만 먹고 팬티도 달라붙는 실크만 입고 커피는 에스프레소만 마십니다. 양아치랑은 다르죠. 폼에 살고 폼에 죽는 거에 심사위원들께서 감명받으셨나 봅니다. 보스가 자기 애인 희수를 지켜달라고 했는데 사실 희수에게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보스가 어떻게 알고 ‘너 그 애 때문이냐 그런 거냐’ 그러더라구요. 마음을 들키니까 쪽팔리더라구요. 그래서 오히려 보스에게 따졌죠.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눈물을 흘리며 희수에게 전화를 걸려고 휴대폰 폴더를 열 때 멋있지 않았나요? 일부러 슬로모션으로 했어요. 희수가 사고 싶어하던 스탠드를 집 앞에 몰래 두고 오는 것도 멋있죠?
(방청객 희수의 중얼거림.) 좋아한다고 말 한번 못해본 찌질한 놈이. 무슨….
고전 깡패상 - <거룩한 계보>
이상식 네, 점점 시상식장 분위기가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모던 협객을 뽑았으니 다음은 고전 협객을 뽑는 게 어떨까요.
나편견 네, 최근 조폭영화의 진화는 직장인으로서의 건달 세계를 예의주시한다는 거죠. 전형적인 조폭 세계의 낭만과 서정을 극적으로 보여준 <거룩한 계보>의 주중이 영예의 고전 깡패상 수상자로 결정됐습니다. 아 벌써 나오셨네요.
깡패라뇨, 에이 정말 나요, 군대 현역 갔다 왔지요, 몸뚱이에 문신이라곤 한개도 없지요, 또 뭐요 순천 지역 유네스코 회원에다가 매년 삼만원씩 뭐이냐 그 잉, 국경없는 의사회 성금도 낸다 이 말이요, 나가 어딜 봐서 깡패요? 나 회사원이요. 회사원인 게 시키는 대로 친구 치성이를 죽이려고 했지요. 나중엔 회사 구하려고 치성이가 모는 차 앞에 가서 몸까지 박았지라. 막판에 우릴 서로 이간질시킨 보스 영희 머리에 총알 박을 때는 얼마나 멋있소. 나 빨리 상 타고서 우리 친구들 빨리 만나야 쓰겄소.
(방청객 여일이 벌떡 일어난다.) 멜로를 해요, 멜로를. 서로 찌르면서 울고, 있는 폼 없는 폼은 다 잡고 지네 식구끼리 죽이면서 뭔 우정이고 지랄이냐. 그래봐야 니네들끼리 배신하고 배신하는 거 아니다냐.
(여일의 얘기에 갑자기 울컥해진 동치성이 일어난다.) 나가 그때 시방 얼굴이(치성 등을 흉기로 찌른 후배) 안 보인게 뽑고 가라 혔지. 얼마나 서러벘을 것이여. 선배를 찌르라고 회사에서 시켰으니. 그라고, 여러분, 나처럼 착한 건달 보셨쇼. 칼주기 전에 그 부위를 찔러도 되겄는지 묻는다니께요. 야, 주중아 근디 상품으로 OB 나이트클럽 운영권을 받으면 워쩌냐. 남새스럽게.
액션협객상 - <천하장사 마돈나> <주먹이 운다>
이상식 네, 또 흥미로운 경향은 이제 전문 운동선수 출신 협객들이 늘어난다는 거죠. 액션협객상의 공동수상자 <천하장사 마돈나> 오용택 선수와 <주먹이 운다> 강태식 선수 모시겠습니다.
한번만 삐끗하면 씨발, 인생 나가리거든요, 어? 항시 가드 올리고 상대 주시하고. 늘 소주 마시면서 집안살림 부수고 마누라 쫓아내면서까지 애들한테 하는 얘기에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에게 한국에 왔으면 한국말을 하라고 준엄하게 꾸짖고, 여자되겠다는 아들은 주먹과 발로 차면서 남자 대 남자로 하자고 가르치고. 나 같은 아버지가 진짜 한국 아버지지.
(강태식이 제지한다.) 형씨, 술 안 깼어? 내가 학부모 수업 때 <뽁싱과 나의 삼>에서 말했듯이 말이야, 무식한 아버지 만나서 아들은 학교에서 개쪽이나 당하고… 마누라는 고작 한다는 게 돈 몇푼에 가랑이 내주고… 새끼만 아니었으면 벌써 한강에서 뛰어내렸어! 제가요, 여러분. 이렇게 먹고살려고 애씁니다. 나야말로 참된 대한민국 아버지상 아닙니까. (눈물을 흘린다.)
(방청객 최상철 국숫집 사장이 일어나 의자를 걷어차고 퇴장한다.) 나잇살 처먹었으면 그만 좀 찡찡거리지. 사연있는 사람 니네만 있는 거 아냐.
(오용택과 강태식이 상을 반납하겠다고 하자 식장 분위기가 딱딱해진다.) 알겠시다. 이제 그만 찡찡거릴게. 나 이 상 반납할래. 나 권투 다시 하면서 변했어.(강태식) 나도 동구랑 헤어진 마당에 뭐 이런 걸로 상 받는 거 기분 이상해, 반납할랍니다.(오용택)
국제화시대 협객상 - <태풍>
이상식 (서둘러 수습하는 사회자.) 자, 다음은 <태풍>의 강세종 대위가 이끄는 해군사관학교 축하공연이 있겠습니다. 곡목은 <진짜 사나이>. 네, 늠름한 애국심의 화신, 강세종 대위와 맞서는 최명신 캐릭터가 입장합니다. 국제화시대 협객상입니다.
동무들, 사람 고기 먹어봤소. 내는 미국 상선 선원들도 모두 죽이고 20년 전 남한으로 망명을 못하게 한 외교관도 칼로 죽였시요. 조선땅 동무들이 피를 토하고 살덩이가 터져 죽는 꼴도 반드시 지켜보기요. 내레 내 손으로 죽어가는 누나도 해치웠지비. 강세종 동무와 우정을 쌓을 기회가 없었단 건 아쉬움이오. 좆같은 사실은 우리가 말이 통한다는 사실이었음메.
(방청석에 앉은 누나 최명주가 단상으로 뛰어올라온다.) 둘이 아예 연애를 허지비. 서로 말할 시간도 없었슴서. 병원에나 데려가지 내는 왜 쏴죽였슴메. (죽은 외교관도 같이 따라나온다.) 난 실권자도 아닌데 왜 죽였어. 억울해.
로맨틱 협객상 -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상식 (서둘러 시상식을 진행하는 사회자들) 자, 다음은 이제 시상식의 꽃인 대상과 작품상을 결정하기 전에, 로맨틱 협객상입니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영운입니다. 사랑의 고뇌로 번민하는 남자의 내면을 잘 보여줬죠. 시상엔 <해변의 여인> 김중래 감독이 수고하시겠습니다.
연아란 년이 말이죠, 설거지도 제대로 안 해놓고, 저 또라이 같은 년. 먼저 만난 수경이랑 결혼해야지 그럼 어쩌란 말이에요. 나이트클럽 상무한테 맞아죽을 뻔한 걸 구해준 건 고맙죠. 그래서 답례로 연아 집으로 가서 빨아달라고 했죠. 물론 씻지도 않구요. 어디요? 에이, 참. 그년은 생활비나 달라고 하고 내가 은행인 줄 알아요, 미친 년. 그래서 뺨 좀 때려줬죠. 며칠 동안 밥도 안 먹어서 얼굴이 이상하더라구요. 그래도 이 수상의 기쁨은 그년이랑 할게요. 걔 지금 시골 단란주점에 있어요.
(중래, 트로피를 건네며 귓속말로) 야 이 찌질아, 나도 찌질이지만 넌 남자 망신 다 시키는구나.
작품상 - <친구>
이상식 네, 그럼 오늘의 하이라이트, 작품상과 대상이 남았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작품상에 <친구>의 준석입니다. 여러분 박수로 환영해주십시오.
아이 쪽팔려서, 왜 대상이 아닌 거야 씨발. 어릴 때 우리집에 삼촌들이 많아서 참 좋았는데 중학교 때 한번 가출하고 돌아오니까 그때 내가 삼촌이라고 부르던 새끼들 중에 한놈이라도 내를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기라… 씨~바… 누가 패주기라도 했으믄 혹시 내가 정신을 차리고 대상을 받았을지도 모르는데…. (여자방청객들이 야유를 하자) 뭘 보노. 저 씨발년이 지금 누구를 째리노? 확 *지를 잡아 찢어삐까. 건달이 좋은 건 고가도로에서 급정거를 해서 교통 엉망으로 만들고 아르마니 양복을 휘날리며 친구가 탄 택시를 잡을 수 있다는 기다. 서로 아는 친구를 죽이는 걸 머라 카는데 친구가 머꼬. 친구 사이는 미안하단 말이 필요가 없다. 내가 룸살롱서 개판치고, 자해하고, 피 콸콸 쏟아져 나오는디 양주 병나발 불고 그게 다 마음이 아파 그런 기다. 내가 왜 동수 죽인 거 다 뒤집어썼냐고? 쪽팔리서. 동수나 내나 건달 아니가. 건달이 쪽팔리믄 안 될 거 아이가. 가오가 있지.
대상 - <열혈남아>
이상식 네, 감동적인 연설입니다. 그럼 대상의 영예는, 네… <열혈남아>에게 돌아갔습니다. <친구>의 성과를 이어받아 모성애로 품어 안은 건달 휴머니즘, <열혈남아>의 재문을 소개합니다.
(개를 끌고 단상에 올라가는 재문. 개를 향해 오줌을 싼다. 방청객들이 욕을 하며 빠져나가고, 수상자들은 말리느라 식장이 개판이 된다.)
어딜 도망가? 난 니네들, 니네 엄마들 다 작업할 수 있어. 치국이 이 새끼, 선배가 시키면 할 거지, 어디 나한테 칼을 주고 지랄이야. 넌 이 새꺄 선글라스가 안 어울려. 그리고 대식이가 자기 엄마랑 있을 때 내가 칼들고 들어간 게 뭐가 이상해 씨발, 난 삼년 동안 내 빤스 빤 놈도 작업했어. 민재 형 칼 맞는데 도망간 게 너무 쪽팔려서 그런 거냐구?(운다) 대식이 이 씨발놈아, 그래도 내가 칼이 빨랐지? 행복한 줄 알어 새꺄…. (울어서 목이 멘다) 나 죽기 전에 대식이 엄마한테 와서 울면서 죽었잖아. 그럼 된 거잖아, 용서해, 씨발. 날 이해해달라구. 어디들 가는 거야?
(방청객들이 빠져나가면서 한마디씩한다.) 아니 왜 지가 죽인 놈 엄마한테 와서 우냐. 미덕이 없어 미덕이.(여정다방 미령) 연설허네. 아이 어른이 왜 그런다요 질질 짜고 징징대고.(태권도장 어린이들) 저놈이 저렇크롬 슝악한 놈인줄 알았으면 꽃남방이고 뭐고 안 사줬을 것인디.(혀를 차는 국밥집 김점심 여사)
(재문, 주중, 준석 등 양아치들이 식장의 음식 등을 집어던진다. 방청객들도 계란과 토마토로 대항한다. 재문이 도망가는 어린아이를 붙잡고 혼내려고 하자 어린아이가 소리친다.) 하지 맙시다이~, 오줌 묻은 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