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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에 이르는 다섯 가지 열쇠
김현정 2006-12-06

전쟁의 그림자, 신비로운 미로 속의 식인귀와 반신들

1. 미로

자신을 찾기 위한 장소

‘패턴’이라는 일종의 미로를 창조한 <앰버 연대기>의 로저 젤라즈니가 그랬듯이, 많은 작가들은 미로가 자아와 운명을 찾기 위해 걸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도 비슷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는 <헬보이> 감독판 코멘터리에서 “미로는 길을 잃고 헤매는 곳이 아닌, 자신을 찾기 위한 장소라는 말이 있다. 미로에서는 자신에게 꼭 맞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델 토로는 자신의 영화에서 미로 혹은 어느 한 길을 택해야만 하는 갈림길을 자주 사용하곤 한다.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개의 열쇠>는 그러한 미로의 이미지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오필리아는 미로 동굴을 통과해, 그 중심에 놓인 조그만 미로 도형에 당도하는데, 그 원형의 미로는 <헬보이>에서 라스푸틴을 부활시키기 위해 희생자의 피를 흘려보내는 원형 미로와 매우 비슷한 모양이다.

2. 뱀파이어, 식인

멕시코 문명사의 매혹적 존재

<미믹>으로 상처를 받았던 기예르모 델 토로가 마찬가지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블레이드2>를 연출한 까닭은 뱀파이어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뱀파이어를 향한 매혹은 멕시코 문명사에서 매우 뿌리깊은 요소다. 우리는 일종의 카니발리즘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생존과 제례와 신화의 의미로서 친족과 이웃을 먹어왔다.” 고대 아즈텍 신화에서 자신의 몸으로 대지와 하늘을 이루었던 포악한 여신은 끝까지 죽지 않았고, 인간의 피와 심장에 목이 말라 욕구가 충족되는 순간까지 지상의 식물이 열매맺기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전통 속에서 성장한 델 토로의 첫 번째 장편영화 <크로노스> 또한 변형된 뱀파이어 이야기였고, <판의 미로…>의 ‘창백한 남자’는 벽화 속에 아이들을 잡아먹었던 식인귀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3. 스페인 내전

전 유럽으로 번진, 좌파와 우파의 대결

기예르모 델 토로는 <악마의 등뼈> <판의 미로…>에서 두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택했다. 인민전선이 근소한 차이로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었던 1936년, 프랑코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노동자들이 무장봉기로 저항하면서 시작됐던 스페인 내전은, 영국과 프랑스의 불간섭 정책에도 불구하고 전 유럽 좌파 지식인들이 참여하는 전쟁으로 번져갔다. 좌파의 분열과 우파의 반격이 있기 전까지 잠시 동안 스페인은 계급과 신분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해방구가 되었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와 앙드레 말로의 <희망>이 부서진 유토피아를 증언하는 문학작품들. <악마의 등뼈>는 1939년 1월 바르셀로나를 점령한 프랑코가 지역으로 공세를 넓혀가고 있을 즈음이고, <판의 미로…>는 산발적인 게릴라 전투만이 진행되던 1944년이 배경이다.

4. 아서 래컴

정교한 펜선, 어둠의 색, 관능적 묘사의 삽화가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일러스트레이터 아서 래컴은 정교한 펜선과 담채화에 가까운 색채 사용으로 사랑받았던 작가다. 어린아이들의 스케치로 그림을 시작한 래컴은 그림동화와 아일랜드 민화집 등의 삽화를 그렸고, <걸리버 여행기>처럼 좀더 진지한 소설에도 삽화를 넣었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래컴의 그림을 좋아하여 <판의 미로…>의 컨셉으로 삼은 이유는 “요정 이야기를 어둡고 관능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처럼 래컴은 신록을 간직한 수풀에도 그늘과 어둠의 색을 첨가했고, 모두가 컬러에 열광하던 시대에 색채 사용을 극히 자제함으로써 오래된 목판화와도 같은 온기를 만들어냈다. 섬세한 이목구비, 부드럽고 풍성하게 늘어지는 옷자락으로 대신한 육체의 관능미, 머리카락과 주름 한 가닥 한 가닥을 놓치지 않는 가는 펜선이 그의 특징. 델 토로는 <헬보이>에서 리즈(셀마 블레어)의 마지막 모습을 래컴이 그린 백설공주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5. 판

켈트 신화에 가까운 변덕쟁이 반신

기예르모 델 토로는 칸영화제 도중 가진 인터뷰에서 <판의 미로…>의 판이 “그리스 신화의 판과는 조금 다른, 고대의 요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스 신화의 목양신 판은 염소의 뿔과 다리를 지닌, 피리를 곧잘 불고 음탕하지만 흉한 외모 때문에 여인들에게 거절만 당하는 반신(半神)이다. 변덕이 심하고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판은 믿기 힘든 존재다. 델 토로의 판도 숫양의 뿔을 달고 있지만, 그리스 신화보다는 켈트 신화에 가까워 보인다. 켈트의 땅이었던 스코틀랜드에서 <헬보이>의 첫 장면을 찍고 싶어했던 델 토로는 켈트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북부 스페인을 <판의 미로…>의 배경으로 택해 마음껏 이교도의 상징을 사용했다. 다만 믿기 힘들다는 점은 여전하여 메르세데스는 오필리아에게 “할머니는 그 요정을 조심하라고 하셨는데”라고 경고한다. 이 영화에서 판을 연기한 더그 존스는 ‘창백한 남자’로 1인2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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