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감독의 신작을 보기 힘든 한국에서 올해 상반기와 하반기의 끝자락에서 여균동과 배창호의 작품을 만난 기쁨은 컸다. 우연인지 <비단구두>와 <길>은 공히 로드무비 형식으로 한국적 정서를 표현한 작품이다. 두 감독이 자조 방식으로 힘겹게 만든 영화가 또한 어렵사리 개봉됐지만 관객은 많지 않았다. 먼저 <비단구두>가 DVD로 관객을 찾는다. 두 배우를 이끌고 음성해설을 척척 진행하는 여균동의 솜씨에 방송 진행자와 배우로서 활동했던 전력이 묻어난다. 음성해설 도중 최덕문의 말수가 적으니까 여균동은 “두 마디 이상 문장은 안 됩니까”라고 따져본다. 그래도 최덕문은 그냥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할 뿐이다. 어이없었을 감독의 얼굴이 선히 보인다. 깡패의 협박에 못 이겨 영화 흉내를 내게 된 감독의 이야기 <비단구두>에는 “영화는 뭐든 할 수 있잖아”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건 쉽지 않음을, <비단구두>는 안팎으로 보여준다. ‘빈곤한 가짜 영화 만들기’라는 영화의 내용은 <비단구두>를 실제 제작하는 과정과 다르지 않았다. 김다혜가 슬프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며 감독은 그 장면에 자금 사정상 적은 수의 단역을 출연시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슬퍼하고, 두 주인공이 북한으로 간 이후의 엔딩장면은 결국 희망사항으로 남았으며, 촬영을 마칠 즈음 배우들이 작은 회식을 준비할 동안 감독은 조명비 70만원을 구하느라 사방으로 뛰어다녀야 했단다. 게다가 영화 제작의 힘겨움은 DVD 제작으로 이어져, 제작과정을 기록한 사람이 티베트에 있는 바람에 메이킹 필름이 DVD에 실리지 못했다. <비단구두>의 관객은 1천명을 넘지 않았다. 그래도 감독은 “영화가 세상에 모든 모습을 보이고 끝을 맺게 되어서 감사하다”는 끝인사를 잊지 않는다. 마지막 말에 가슴이 뻐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