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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질 듯 위태롭게, 행간은 변주된다
김현정 2006-11-30

<에보니 타워> 존 파울스 지음 | 정영문 옮김 | 열린책들 펴냄

<에보니 타워>는 <콜렉터> <프랑스 중위의 여자>의 존 파울스가 중편과 단편을 엮어 1974년 발표한 단편집이다. 1926년에 태어난 파울스는 전후(戰後)에 소설가로서 활동을 시작했고, 대표작인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1969년에 발표됐다. 그런 연표를 떠올리며 예술과 소설과 창작에의 질문이 어른대는 <에보니 타워>를 읽는다면 이 소설들이 품고 있는 긴장을 좀더 밀접하게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파울스가 애초 <변주>라고 이름 붙이고 싶어했던 <에보니 타워>는 개별 작품의 줄거리를 나열하는 행위가 부질없게 느껴지는 소설집이다. 예를 들면 타이틀작인, 상아탑인 아이보리 타워와 대비되는 용어인 <에보니 타워>는, 노화가를 방문한 젊은 화가 겸 작가가 겪는 이틀과 에필로그 비슷한 찰나의 느낌이 전부인 소설이다. <수수께끼>는 느닷없이 사라진 성공한 신사의 실종 원인을 좇는 듯하지만 해답을 유보하고, <불쌍한 코코> 또한 외딴집에서 강도를 당한 작가와 강도의 대화 그리고 작가의 추측이 전부다. 그런데도 <에보니 타워>는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서 느껴졌던 위기감과 <콜렉터>의 긴장이 밀도를 높여 녹아 있다. 창작자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예술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가, 현실의 빈틈을 메우는 허구는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처럼 외면하기 힘드나 돌파하고자 든다면 더욱 힘이 드는 질문이 변주를 거듭하는 소설들 아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에보니 타워>가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라는 단어에서 감지되는 난해함을 함정으로 삼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이 아무렇지 않으나 긴장을 싣고 있듯, 중편 <에보니 타워>도 소풍과 식사와 산책의 시간이 무너질듯 위태로운 소설이다. 대부분의 소설이 질문을 던지고 있기에 탐정소설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도 가독성을 높이는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