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일까. 정화조, 사다리, 파이프 비계, 피뢰침, 소화전, 나뒹구는 안전모, 시멘트 부대, 모래. 게다가 이중구조의 옥상이라 칼바람이 몰아친다. 촬영장일까. 육중한 조명기, 두대의 필름카메라, 현장모니터, 그리고 검은 양복을 입은 송강호. 청계천과 서울이 한눈에 들어오는 10층 건물 꼭대기인 이곳은 <우아한 세계>의 마지막 촬영장이다. 허공에 매달린 빨간 크레인 아래 삼삼오오 모여앉은 배우들과 촬영팀, 사진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애플 박스를 들고 난간을 걸어가는 스탭의 모습이 아찔하다. 공사현장과 촬영장이 비빔밥처럼 뒤섞인 정경에 걸맞게 촬영장비도 모두 크레인으로 이동시켰다. 현장모니터를 비워놓고 하늘과 가까운 카메라 옆에 다가선 한재림 감독은 “섭외가 어려워서 결국 마지막에 촬영하게 됐다”고 로케이션 배경을 설명한다.

이날 촬영은 극중 폭력조직 ‘넘버쓰리’ 강인구(송강호)가 공사를 지연하며 돈을 요구하는 현장소장(정인기)을 찾아오는 장면이다. 촬영장이 배우의 것이듯 공사장은 인부들의 것이다. 유유자적하며 막걸리를 마시다가 흉포하게 변하는 인부들에 비해 건달 인구 일당은 초조하기 짝이 없다. <우아한 세계>는 그렇게 “전원주택을 꿈꾸고 두 아이의 미국 유학을 고민하는” 평범한 아버지의 일상을 갱스터 세계로 밀어넣는다. 옥상을 벗어나도 어려움은 계속된다. 시나리오상에는 전기가 끊겨 인구 일당이 계단을 오르내리지만 촬영장 가건물에는 아직 엘리베이터 자체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상태. 아침부터 계단을 쉴새없이 오가던 송강호는 “흔히 말하는 조폭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정통 누아르나 갱스터영화의 형식이나 맛을 뒤트는 영화, 주인공 캐릭터도 비장하고 진지하기보다는 아이러니한 요소가 강하다”라고 귀띔한다. 8층 계단에서 촬영이 재개된다. 촬영 77회차 동안 빠짐없이 동참했던 두대의 촬영카메라가 먼저 자리를 잡고 배우들이 계단에서 동선을 확인하자, 사람 하나 들어설 틈도 남질 않는다. 카메라 옆에서 감독에게 보여주기 위해 소형 모니터를 손바닥에 올려놓은 스크립터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날 촬영으로 반년간의 강행군을 마무리한 한재림 감독의 <우아한 세계>는 내년 1월 극장가에서 관객과 마주할 전망이다.

현장편집 김영국 기사

“연출자가 생각하는 그림을 가장 먼저 표현한다”

프로게이머처럼 손이 빠른 사람을 영화 촬영현장에서 찾는다면? 바로 현장편집 기사다. <우아한 세계>의 현장편집은 김영국 기사의 몫이다. <6월의 일기> <사생결단> <우아한 세계>의 현장편집 김영국 기사는 <효자동 이발사> <어린 신부>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메이킹 편집으로 이 세계에 발을 들였다. 누아르영화 <사생결단>에서 유독 많은 로케이션으로 힘들었던 그는 <우아한 세계>에서는 “촬영 내내 카메라 두대를 사용한 탓에 많은 테이크” 때문에 고생했다. “글 콘티로만 두배 분량의 일을 했지만 연배가 비슷한 한재림 감독님과 호흡이 잘 맞아서 즐거웠다”는 그는 메이킹 편집도 책임진다. 김 기사는 “현장에서는 다음 컷의 진행 여부가 현장편집에 의해 결정되니까 늘 시간에 쫓긴다. 그 순간, 나머지 스탭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기 때문에 일단은 퀄리티보다 진행을 우선시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파트”라고 현장편집의 특성을 설명한다. 뒤집어 말하면 “연출자가 생각하는 그림을 가장 먼저 표현하는 자리”라는 매력도 있다고 한다. <극락도 살인사건> <작은 연못>의 메이킹 편집을 맡은 E&Motion을 운영하는 김영국 기사는 내년 2월이면 다른 영화로 현장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