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면서 ‘재미없다’는 불만만큼 종종 등장하는 코멘트가 바로 ‘저게 말이 되냐?’는 불평이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시라.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시나리오로 만들어지고 영화로 제작되는 것 아니겠나. 주인공에게 미션을 부여한 영화들도 그런 맥락에서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또 직업적 신념이나 생존 때문에, 주인공들은 항상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에 과감하게 도전한다. 그러나 진실은… ‘영화가 끝나버릴까봐’일지도. 일례로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게임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접속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주인공인 중국음식점 배달원 주(김현성)가 ‘아니오’를 선택했다면, 영화에 들인 약 100억원의 제작비와 4년간의 제작기간이 무의미해진다는 말씀. 각설하고, 치밀하고 정교한 영화적 장치 탓에 진퇴양난, 빠져나올 구멍 하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 주인공들을 꼽아봤다. 적어도 똥폼 잡으면서, ‘나의 신념은~’하는 영웅적 인물들은 아니란 말씀. 그럼 ‘살기 위한 미션’에 누가누가 선택되었나, 그 끔찍한 불행의 주인공들을 만나보자.
5위는 <세븐>의 데이비드 밀즈(브래드 피트). 형사인 그에게 일주일간의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미션이라기보다는 직업적인 업무 수행에 가깝지만, 살인자 존 도우(케빈 스페이시)와 점차 얽히면서 변해가는 밀즈의 상태를 보면, 결국 살인자가 계획한 게임 같은 미션에 걸려들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 동안 7명을 살해하면서 단테의 7가지 대죄악으로 그들의 살해 이유를 명명한 존 도우는 연쇄살인사건이 진행된 5일째 검거되는데, 살인사건을 막아야 한다는 밀즈 형사의 강박은 결국 마지막 희생자를 직접 살해하게 되는 미션 아닌 미션을 수행하게 되는 셈. 그 끔찍한 분노의 고통. 매우 주관적으로다가 눈물을 꽉~ 머금은 섹시남 브래드 피트가 안쓰러워서, 5위.
4위는 <사일런트 힐>의 로즈(라다 미첼). 이 경우는 자신의 생존보다는 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모성본능으로 미션에 투입된 케이스. 몽유병 증세가 있는 병약한 딸 샤론이 의식불명 상태에서 “사일런트 힐에 가고 싶다”는 말을 계속 남기자, 샤론과 함께 그곳을 향하는 로즈는 우연히 교통사고를 겪게 된다. 의식을 잃은 사이 사라진 딸을 찾으러 사일런트 힐에 들어선 로즈. 여러 가지 단서를 통해 머리를 굴려가는 보물찾기성 미션과 실로 주인공스러운 목숨보전운이 대박으로 따르고, 짧은 시간에 체력도 부쩍 성장하사, 영화의 원작처럼 게임 같은 과정을 거쳐, ‘사라진 딸 찾기’ 미션을 수행한다.
3위는 <큐브>에 갖힌 여섯 사람들. 경찰, 젊은 수학도, 여린 자폐아, 여의사, 전과자, 그리고 나중에 이 큐브의 설계자라고 신분을 밝히는 한 남자. 정신차려보니, 네모난 방. 한방의 출구는 또 다른 방의 입구가 되고, 결국 가도 가도 이 거대한 큐브로 이루어진 곳의 비밀을 풀기는 어려워 보인다. 탈출하기 위해 잘못 나가봤자 또다른 방이 나오거나 최악의 경우 별 희한한 방법으로 죽음을 당하게 되는 완전쌩뚱초울트라진퇴양난공포 시츄에이션. 왜 이곳에 모이게 됐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에게 무엇이 되었든 하나씩 알아가는 것부터 생존을 위한 미션의 시작인 듯. 젊은 여자 수학도가 방 입구에 써 있는 숫자를 통해 큐브의 비밀을 하나씩 찾아가면서 뭔가 풀려가는 듯하지만, 과연…? ‘산 넘어 산’같은 ‘방 넘어 방’. <큐브>의 미션이 3위.
2위는 <쏘우> 시리즈의 주인공들. 1편에서는 네모난 공간에서 발이 묶인 채 마주보는 사람을 죽이라고 하더니, 2편에서는 체포된 상태에서, 2시간 안에 밀폐된 공간에 있는 사람들을 독가스로 죽이겠다던 살인마 직쏘(토빈 벨). 3편에서 약간~ 상태 안 좋게 출연하는 직쏘는 뇌 전문 의학박사인 린(바하 수메크)에게 미션을 부여한 상황. 또 다른 인질 제프(앤거스 맥파디언)가 미션을 수행하는 동안, 직쏘를 살려내야 한다고. 현실에 감사하지 않고, 타인에게 기생하는 자를 심판한다는 직쏘가 마치 하느님인 척하는 사이코 같기는 해도, 계획하는 범죄는 끔찍하게도 빈틈이 없으니 말려든 인질들은 극악한 공포와 규칙이랍시고 제안하는 미미한 생존 가능성을 앞에 두고 항상 잔혹한 선택을 해야 한다. 관객도 졸도할 만한 직쏘씨의 잔인함에 치를 떨며 2위.
1위는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의 오필리아(이바나 바쿠에로). 재혼한 엄마를 따라 새로 이사온 집에서 기이한 외모를 가진 요정 판을 만난 오필리아. 판에게 자신이 지하세계의 공주였다는 얘기를 듣는 오필리아는, 판이 알려주는 대로 다시 공주로 돌아가기 위해 세 가지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펴면 백지에 힌트가 그려지기도 하는 마법동화책과 어느 공간에든 문을 그리면 문이 생기는 마법분필, 언제든 도움을 주는 요정들이 오필리아의 든든한 지원군들. 군인으로 무뚝뚝하기만 한 새아빠와의 생활, 내전의 그림자가 채 가시지 않은 현실세계. 이곳을 벗어나, 지하왕국으로 가려는 오필리아의 환상적인, 그리고 안쓰러운 미션이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