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국, 인도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인도영화제가 열린다. 우리에게 인도영화는 낯선 느낌이 있지만, 사실 인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편수의 영화를 제작하는 나라로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영화시장을 갖고 있다. 인도영화의 중심지 봄베이(지금은 뭄바이)와 할리우드를 합성한 ‘발리우드’(Bollywood)라는 용어만 보아도 인도영화가 자치하는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인도에서는 할리우드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매우 낮다. 인도인들은 자국에서 생산된 영화의 문법에 익숙하고 그 영화들을 즐기며 인생을 보낸다. 전체 인구 중 빈곤층이 대다수인 인도는 TV 보급률이 낮고, 영화 외의 오락거리가 거의 없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가 시간에 극장을 찾는다. 이런 현상을 현실도피적인 대리만족이라 지적하기도 하지만, 인도인의 삶에서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인도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노래, 무용, 연기가 어우러진 독특한 양식에 있다. 인도영화는 할리우드처럼 뮤지컬, 멜로드라마, 코미디 등으로 장르가 분화되지 않고 통합적인 방식으로 발전되었다. 그래서 생긴 명칭이 ‘마살라’(masala) 스타일이다. 즉, 온갖 향신료를 섞어서 만들어내는 인도 고유의 양념 마살라처럼 인도영화에는 갖가지 요소가 혼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스타일은 이미 193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그 기원은 인도의 전통적인 파르시 연극에서 찾을 수 있다. 마살라 스타일이 인도영화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중적인 양식이라면, 한편으로는 진지하고 예술적인 영화 영역에서도 인도영화는 전통과 저력을 가지고 있다. 인도는 세계 영화사의 출발과 발맞추어 영화산업을 발전시켜온 나라이다. 1896년에 뤼미에르 단편영화를 상영했고, 무성영화 시대에는 연간 100여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영화제작 편수는 계속 증가하여 1980년대에는 700여편, 1990년대 이후로는 900편 이상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영화산업 강국답게 이미 1950년대에 샤트야지트 레이라는 걸출한 감독이 서구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영화 ‘아푸 3부작’은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은 사실주의 미학으로 인도의 실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번 인도영화제는 <춤추는 무뚜>(1995), <까삐꾸시 까삐깜>(2001) 등 그간 두어편 국내 개봉된 영화로는 실상을 알기 힘들었던 인도영화의 다양한 면과 현재 인도영화를 이끌어가는 감독들의 작품세계를 확인할 있는 기회이다. 종로 스폰지하우스에서 11월23일부터 4일간 열리며, 3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장편 6편과 단편 4편이 상영된다. 먼저, ‘신의 딸들’이란 제목의 섹션1에서는 인도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두편이 선보인다. <쥬베이다>는 인도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시얌 베네갈 감독의 영화로 뮤지컬과 멜로드라마가 혼합된 전형적인 발리우드영화이다. 쥬베이다라는 이름을 가진 엄마의 파란만장하고 짧은 일생의 흔적을 아들이 찾아가는 형식이다. <변치 않는 것>은 10세기 말라 왕국의 특이한 전통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불임 남편을 둔 여성이 출산을 위해 씨내리를 하는 니요기라는 전통이다. 섹션2에서는 남인도의 전통무용인 카타칼리의 일인자 칼라만달람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칼라만달람>과 세편의 드라마가 상영된다. 현재 인도, 인도인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 섹션에는, 영화 스타의 살인사건을 다룬 범죄스릴러 <그날 밤 그곳에 누가 있었나>와 시골에서 상경한 소년의 힘겨운 도시생활을 보여주는 <무지개 너머 어딘가>, 어촌을 배경으로 우정과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는 <바다꽃 이야기> 등이 포함되어 있다. 섹션3에는 개성 넘치는 네편의 단편 모음이 준비되어 있어서, 인도영화의 미래를 이끌 젊은 감독들의 영화세계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