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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노동자 1일 12시간, 주 66시간 일한다
김수경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6-11-17

영화노조 - 제협 단체교섭 첫 결실, 마지막 고비인 임금협상은 남겨둔 상태

영화노동자의 ‘삶’의 토대가 마련됐다. 지난 6월27일부터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과 사단법인 한국영화제작가협회 교섭단(이하 교섭단)은 열흘 간격으로 열번의 단체교섭을 벌인 결과, 단체협상 체결을 거의 확정했다. 지난해 영화노조가 설립된 이후, 국내 최초로 가진 단체협상이 구체적인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국내 최초 단체협상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한 교섭위원의 말처럼 “다른 업계의 일반적인 노사협상은 대개 당해년도에 임금을 몇 퍼센트 올려달라는 요구를 합의하는 과정으로 끝난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 시작하는 입장이라 하나씩 모든 걸 규정해야 하고, 직무에 따른 특수성이나 감독과 제작사의 관계 같은 변수들도 전부 고려해야 했다”고 어려움을 밝혔다. 영화노조와 교섭단에서 각각 7인의 교섭위원이 참여하고 영화노조 최진욱 위원장과 싸이더스FNH 차승재 교섭단 대표가 대표위원으로 나섰다. 여러 가지 난관에도 불구하고 양쪽은 넉달여 만에 단체협상을 마무리짓는 개가를 이뤄냈다. 최진욱 위원장은 “모래알처럼 떨어져 있던 파트들이 뭉쳐 영화노조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산개된 영화현장을 묶어 스물아홉개 제작사를 상대로 일관된 협상을 벌였고, 노사의 창구를 확고하게 확보한 것이 가장 큰 의의”라고 말했다. 참여 제작사는 싸이더스FNH, MK픽처스, 튜브픽쳐스, 씨네2000, 이스트필름, 시네라인투, 두사부필름, 백두대간, 나비픽처스, 필름매니아, 인디컴, 어나더썬데이, 나우필름, 마술피리, 시네마서비스, 프라임엔터테인먼트(LJ필름), 제네시스픽처스, 프리시네마, 청년필름, 화이트리시네마, 현진시네마, 눈엔터테인먼트, CK픽처스, 청어람(이상 제협 24개사), 아이필름, 영화사 키노투, 아름다운영화사, 트리쯔클럽, 무사이필름(이상 비제협 5개사) 등이다.

임금 지급, 고용 시기, 휴게시간 등도 명기

교섭 때마다 5~8시간의 마라톤회의를 겪은 단체협상에서 영화노조와 교섭단이 합의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표준근로 계약서의 적용, 고용안정을 위한 근로기준법 준수 및 노사공동의 징계위원회를 통한 징계와 해고, 모성보호와 관련된 생리휴가•보호휴가•산후휴가, 남녀평등 및 성희롱 예방, 공휴일을 비롯한 유급휴일 보장, 연월차 및 병가, 노동안전 및 산업재해에 대한 보장, 노조활동의 보장 등이 그것이다. 상기 모든 사안은 “본 협약에 정한 사항은 위임사 내 제 규정, 개별적 근로계약과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령에 우선한다”로 합의해 법적 구속력과 이행의무도 확보됐다. 노사간 단체협상은 2년에 1번씩 이루어지고 새로운 협약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현재의 협약이 유효하다.

이번 단체교섭에서 가장 첨예한 쟁점은 ‘시간’이었다. 제작합리화 및 스탭 처우개선 문제를 다룰 때마다 핵심은 매번 ‘시간’이었다. 제일 중요했던 1일 노동시간은 12시간을 기준으로 15시간까지 연장이 가능한 것으로 양쪽이 최종 합의했다. 1일 15시간, 주 66시간을 초과하는 상황에서는 노사 양쪽 합의에 따라 초과근무가 가능하다. 단 한쪽이라도 합의하지 않으면 어떠한 진행도 불가하다. 교섭단 차승재 대표는 “현실적으로도 12시간 촬영이면 90% 이상의 촬영현장에서는 스케줄이나 진행에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최진욱 위원장은 “과거 기약없이 촬영종료만을 기다리던 시절과 달리 스탭이 자기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근로시간”이라고 밝혔고 영화노조 김형호 정책실장은 “개인의 생활이 예측 가능해지고, 직업인으로서의 영화인의 토대가 확보된 것”이라고 평했다. “한국 영화인력의 평균 연령은 꾸준히 낮아졌다. 결혼하고 애 낳고 집을 장만해야 하는 나이가 되면 언제나 사람들이 떠나기 때문이다. 그러한 최소한의 생활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합당한 돈을 받는 문제만큼 일하는 환경이 변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영화노조 이진환 사무처장의 발언은 대부분의 스탭이 가진 ‘평범한 삶’에 대한 염원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세부적으로는 “원거리 로케이션으로 인한 이동시간, 촬영을 위한 준비•정리•대기•이동시간으로서 개별 노사간에 협의하여 승인한 시간”도 근로시간에 포함됐다. “4시간 동안 일하는 경우 30분, 8시간이면 1시간의 휴게시간을 보장한다”는 사안도 합의됐다. 최진욱 위원장은 “이렇게 정해진 시간이 과도하다고 우려하는 분도 있는데, 이 수준도 지키지 못하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가서 영화를 찍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촬영기간 구체화 등 현장 파급력도 클 듯

이번 협약은 촬영현장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근로시간이 명시된 만큼 촬영기간도 더욱 구체화될 수밖에 없다. 최 위원장은 “기간이 정해지고, 주급으로 임금이 지급되면 촬영지연에 대한 책임소재가 명확해진다. 따라서 계약기간 내에 영화를 완성해야 하는 필요성을 산업주체 모두가 공감하리라고 예상한다. 지금의 현장처럼 몇명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상황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배우들이 스케줄 때문에 촬영현장의 시간 약속을 어긴다면 그 책임은 배우가 져야 하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 이번 협약은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의 임금 지급”을 명시했고, “스탭들의 고용에 대해서도 프로덕션 90일 전에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영화노동자들은 예측 가능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고, 제작사는 촬영기간 단축을 꾀하는 동시에 불필요한 촬영지연의 가능성을 방지하는 프로덕션의 효율을 취할 수 있다. 영화 완성도를 위해 많은 촬영회차를 감내하기로 유명했던 싸이더스FNH 차승재 대표의 “완성도 5%를 높이기 위해 약속되지 않은 회차를 늘리는 과거 사례는 허용되지 않는다”라는 발언은 협약이 촬영현장에 끼칠 실질적인 파급력을 예상하게 한다.

단체협약을 끌어낸 주체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던 문제점은 다름 아닌 “영화산업 각 주체들의 관심 부재”다. 이진환 사무차장은 “영화노조 결성 때도 그랬지만 자기 일인데 왜 말을 하지도 않고 관심을 갖지 않는지 의아했다. 물론 관행적으로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환경도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하는 경향이 강했던 것 같다”고 배경을 예상했다. 교섭단 차승재 대표는 “영화계 구성원들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금액을 지급하면서 영화를 만든 불법 상태에 놓여 있다. 사람을 위해서 영화를 만들면서 그런 행동을 개선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며 건강한 제작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도 계속 좌시할 수 없는 문제”라고 이번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한 연유를 밝혔다.

단숨에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단체협상 체결은 김형호 정책실장의 말처럼 “영화인에게 직업적 자긍심을 부여하는 최소한의 출발”이다. 영화노조와 교섭단도 아직 마지막 고비인 임금 협상을 남기고 있다. 또한, 양쪽이 합의한 협상안이 현장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적용될 것인가 하는 현실의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양쪽은 단체협상의 적용 기준을 내년 7월1일로 정했다. 그 이유는 급작스러운 적용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와 불필요한 실수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차승재 대표는 “협약이 발효되기 전 촬영에 돌입하는 영화에도 시범적으로 협약에 의거한 방식으로 제작에 임할 것이다. 시행 착오를 최소화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약속은 이뤄졌고 남은 것은 실천이다. 한국영화는 “영화를 보지 말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보라”던 앙드레 바쟁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산업적 전환점에 봉착했다.

임금협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막내 스탭들 최저 시간당 3720원 받는다

시간이 해결됐다면 남은 관건은 ‘돈’이다. 11월10일에 계속되는 영화노조와 교섭단의 열한 번째 단체교섭은 ‘임금’협상을 겨냥하고 있다. 2년 단위의 단체협상과 달리 임금협상은 1년 단위로 이루어진다. 현재 윤곽이 드러난 내용은 “1주일 단위로 주급을 지급한다는 것과 12시간으로 책정된 근로시간 1시간당 막내 스탭의 최저임금 기준을 3720원으로 한다는 정도”다. 3720원은 노동부가 고시한 내년 최저임금 3480원에서 10% 인상된 금액이다. 참고로 멀티플렉스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시급도 3720원에서 시작한다. 쟁점은 직무와 직급에 따른 임금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촬영부의 퍼스트, 세컨, 서드가 있을 때 각각의 임금 기준과 최저선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았다. 업무에 따라 금액을 책정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단 양쪽은 모두 ‘하후상박’(윗사람은 박하게 아랫사람은 후하게) 원칙에 입각하여 “하위 스탭일수록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인상폭을 적용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부담을 줄이는 상승폭을 적용하자”는 큰 틀에는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교섭단쪽은 일반적으로 “이미 임금을 많이 받는 직무도 많다”는 시각을 가졌고, 영화노조쪽은 “우리의 제안대로 상승시켜도 전체 인건비의 30% 상승에 불과하다”는 입장이기에 격렬한 논의가 불가피할 듯하다.

한편 교섭단쪽에서는 인턴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차승재 대표는 “1년 정도 인턴 기간을 갖고 인턴은 법정 최저임금 3480원, 막내 스탭은 3720원의 시급을 지급하는 방향이 합리적일 것”이라고 견해를 밝힌다. 인턴 기간을 ‘작품 1편’으로 규정할지 ‘1년’이라는 기간으로 할지는 양자간에 견해차가 있으리라 예상된다. 임금의 가이드라인에 관한 논의는 지속적으로 필요하겠지만 이번 임금협약이 체결되면, 막내 스탭들을 위한 영화산업 내의 최저임금은 확보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