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자신의 리비도에 충실하라는 교훈극이다”
-재민의 약혼녀로 등장한 김정화를 비롯해서 재민의 어머니로 출연한 김화영은 배두나의 어머니이고, 아버지로 출연한 이승철은 이청아의 아버지다. 여기에 <굿로맨스>의 여주인공이었던 박미현, 임범 <한겨레> 전 기자, 촬영감독이자 영화사 대표인 최두영까지 우정출연해 카메오가 굉장히 많다. =다들 분량이 많이 잘려서 죄송스럽다. 특별히 유명한 배우의 부모를 캐스팅하려던 건 아니었고, 어떻게 아는 사람을 통해 ‘배우’를 캐스팅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제작부장이 배두나랑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고 그 어머니까지 소개해줬다. 이승철 선생님은 김화영 선생님을 통해서 캐스팅했고. 저예산영화이다 보니 적은 분량으로 잠깐씩 출연하는 역할에 직업배우를 캐스팅해서 출연료를 지불하거나, 무턱대고 부탁하기가 쉽지 않았다. 최두영 대표는 사실 출연시켜주면 색보정을 공짜로 해주겠다기에 불렀는데, 바로 색보정 기사를 관두시고. (웃음) 상대적으로 저예산영화에 시간도 촉박하고, 정식으로 캐스팅하기엔 좀 미안한데, 단역에게 시키기엔 역할이 세고, 뭐 그런 식이었다.
-편집과정에서 생략을 많이 거친 느낌이다. =1차 편집본이 2시간30분이었는데, 일단 내 스스로 지루한 걸 못 견뎌한다. 3개월에 걸쳐 여러 버전으로 편집해보면서 다양하게 모니터링했다. 처음 편집본이 2시간30분이었고 길이를 줄여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감정상 좀 튀는 경우도 생겼다. 근데 아무래도 전문 편집기사에게 맡기지는 못하겠더라. 남이 손대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일단 촬영 자체를 원신 원컷으로 해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 부분은 다소 아쉽다. 다음 장편은 컷을 많이 나누게 될 것 같다. 직접 편집하면서 첫 장편을 통해 많이 배운 셈이다. 또 중요한 건 힘조절하는 거. 사실 이 영화는 마지막 부분, 야산에서의 사건에서 시작한 거나 마찬가지인데 거의 순서대로 찍어가다 보니 돈도 체력도 바닥이었다. 게다가 연일 최저기온을 경신하고, 눈은 또 얼마나 많이 왔는지. 정말이지 20분 만에 엔딩을 찍는데 울 뻔했다.
-카메라의 움직임이 후반부로 갈수록 적어진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카메라가 움직이는 게 아니라 프레임 안에서 바람이 격렬하게 불고, 인물들도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물은 프레임 안팎으로 움직이는데 카메라는 그걸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느낌으로. 근데 눈 치우고 뭐하고 하다보니 생각한 느낌대로 촬영이 안 된 거다. 편집과 후반작업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색감 아닌가. 후반부로 갈수록 색을 빼기 시작해서 마지막엔 그린과 블루만 약간 넣었다. 원래는 완전히 흑백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DV라 그런지 블랙이 약간씩 뜨는 느낌이더라.
-수민이 호스트바에 적응하는 과정을 묘사한 트래킹 숏들이 참 좋더라. =상업영화 같으면 디지털 트랙으로 속도 다 맞췄을 텐데 눈대중으로 속도 맞추고 하느라고 원래 생각했던 걸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원래 생각하던 단편이 그런 식으로 트래킹으로 쭉 연결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용이었는데 그걸 차용했다. 원래 쓰려고 생각했던 컷도 더 있었는데, 아무래도 아쉽다.
-이병훈 음악감독의 음악도 좋던데. =이병훈 감독이 나보고 그러더라, 다음에 혹시 작업하게 되면 그때는 편집하면서 제발 음악 좀 듣지 말라고. (웃음) 음악감독과 이야기할 때 편집본에 삽입했던 여러 음악의 느낌을 그대로 재연해달라고 주문을 많이 했는데 그걸 맞춤하게 만들어주더라. 한곡만 빼고 모두 직접 만든 음악들이다. 영화 도입부에는 원래 버스커스의 <If I Ruled the World>를 넣으려고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저작권자를 알아내서 연락했더니 1천만원을 달라기에 깨끗이 포기했다.
-동성애라는 소재에 계급문제를 노골적으로 끼워넣었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동성애인지 계급문제인지 모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회적인 발언들은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재민의 방이나 회사, 차 등 시각적인 소품과 설정을 통해 부각해야 했는데, 제작환경이나 시나리오 문제로 그러지 못했다. 동성애 외에도 여러 가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결국은 편집을 통해 모두 잘라낸 셈이다. 그럼에도 몇몇 편린들이 남아 있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 이 영화는 교훈극이다. 자신의 리비도에 충실하라는.
-앞으로 10년 안에는 퀴어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했는데. =<후회하지 않아>가 내 마지막 게이영화라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당분간 다른 장르의 영화를 찍겠다는 것뿐이다. 차기작은 신파액션극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