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날 오후가 기억난다. 녀석은 바지춤에 손을 집어넣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뭐야? 그게.” 모든 게 낯설었던 새학기 첫날, 붙임성도 별로 없던 내가 먼저 말을 걸었던 건 순전히 녀석이 보고 있던 잡지 덕이었다. “응, 퀸. 한국에 올지도 모른대.” 오디오는커녕 워크맨도 없던 나는 녀석이 하는 말이 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퀸이든 송골매든 내겐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특히 녀석이 보고 있던 <월간 팝송>은 중학생의 눈에 시에나 마드레의 황금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날 이후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가는 길엔 항상 녀석이 있었다. 그게 아니라 내가 졸졸 따라갔던가, 기억이 분명치 않지만 아무튼 우리는 친구가 됐고 나는 녀석의 추종자가 됨과 동시에 퀸의 열혈팬을 자처하게 됐다. 녀석은 퀸의 음반을 녹음해줬고 나는 녀석이 모아둔 <월간 팝송>을 숙독하며 말상대가 되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성의를 보였다. 선민의식에 불타 있던 우리에게 마이클 잭슨이나 조용필의 노래에 빠져 있는 아이들은 계몽돼야 할 무지몽매한 백성들, 즉 불가촉 천민이었다. 그렇게 세상은 퀸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로 나뉘었다.
퀸에 대한 우리의 열광이 시들해진 건 녀석이 레드 제플린 이야기를 꺼내면서부터다. 녀석은 빨리 개종했고 퀸에 열광하던 시간을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난 레드 제플린을 따라잡으려 했지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가면서 자연스레 녀석을 만날 일이 없어졌고 새로 옮겨간 고등학교에는 레드 제플린을 녹음해줄 친구가 없었다. 나는 새로 레드 제플린을 배우는 것보다 퀸을 복습하는 편을 택했다. 녀석의 마음을 뺏어간 레드 제플린은 대학 입학 시험을 치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녀석이 그럴 만도 했군, 싶었다.
몇년 전 20년 넘게 못 만났던 녀석을 우연히 만났다. 증권사 펀드매니저로 일한다는 녀석은 몰라보게 살이 붙어 제법 아저씨다운 자태였다. “너, 돈 많이 벌겠다.” “야, 너 배우들 많이 만났겠네.” 오랜만에 만난 30대 중반 사내들의 대화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흘렀다. 만난 순간엔 반가웠지만 너무 다른 세계를 살았던 터라, 잠시 어색한 침묵이 생기자 빨리 자리에서 일어서는 게 낫겠다 싶어 초조했다. 그때 퀸의 노래가 흘러나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거기서 헤어졌으리라. 녀석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를 흥얼거리며 씩 웃었다. 그러자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돌아가신 프레디 머큐리를 위해 건배를 했고 퀸에서 레드 제플린으로 옮겨간 음악 취향의 변천사를 이야기했다. 술잔은 거듭 비워졌고 모르는 사이 우리 안에 있던 중학생들이 튀어나와 재롱을 떨고 있었다. 아주 먼 곳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녀석이 그제야 내 옆에 있다는 실감이 났다.
모르겠다. 나 정도 경험으로 누군가의 팬이 된 적 있다고 말해도 좋은 건지. 하지만 팬이 된다는 게 뭔지 알 것도 같다. 적어도 나는 퀸의 팬이 되면서 친구를 만났고 추억을 갖게 됐으며 오랜 세월이 흘러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이야깃거리를 얻었다. 만약 나와 녀석 사이에 퀸이 없었다면 기껏해야 증권이나 부동산 이야기를 나누다 서둘러 제 갈 길을 가지 않았을까. 오빠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소녀, 욘사마의 흔적을 찾아 단체관광을 따라나서는 일본 아줌마, 흥행에 실패한 영화를 되살리고자 돈을 모아 극장 대관을 하는 팬클럽, 모두가 언젠가 추억으로 남을 일이다. 팬심, 팬질, 팬클럽, 팬문화. 쉽게 무시하고 넘어가는 그런 것 속에 정말 귀한 게 있을지 모른다. 박혜명, 정재혁 두 기자가 성심껏 준비한 이번호 특집기사는 그런 생각에서 비롯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