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작보다 출연작이 더 많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모두들, 괜찮아요?>의 김태용

<모두들, 괜찮아요?>

감독이십니까 배우십니까. 김태용 감독은 연출작보다 출연작이 더 많은 감독 혹은 출연작보다 연출작이 많은 배우다. 이송희일 감독의 <동백아가씨>에서 짙은 쌍꺼풀 훈남 연기로 만천하의 동성 관객을 혼절시키며 화려하게 영화계에 데뷔한 김태용 감독. 그의 최근작은 공히 영화감독 역을 맡았던 민규동 감독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과 남선호 감독의 <모두들, 괜찮아요?>다. 먼저 출연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배우들의 “오디션 따라갔다가 캐스팅됐어요”에 버금가는) “촬영장에 놀러갔다가 캐스팅된 경우”다. 그런데 이게 참 쉽지가 않은 노릇이었다. 김태용 감독의 역할은 원래 대사도 없는 단역이었는데 배우가 대사도 없이 뭐 하냐는 닦달이 배우 주현에게서 마구 쏟아졌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되는 역할이었는데 주현 선생님이 굳이 대사를 만들어주시기까지 했다. 연기 진짜 못한다고 야단도 맞고, 아주 수모를 겪었다. (웃음)” 민규동 감독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주현 선생님은 김태용이 진짜 영화감독인지 몰랐다. 그저 연기 참 못하는 단역이라고 생각하고는 흔쾌히 야단을 쳤다”고 한다. 다음에 찾아온 역할은 남선호 감독의 데뷔작 <모두들, 괜찮아요?>. 당시 <가족의 탄생>을 준비하던 김태용 감독은 “<내 생애…>의 실패를 만회할 기회를 주겠다”는 오기민 대표의 꾐에 넘어가 감독 지망생(김유석)보다 먼저 입봉하는 후배 감독 역을 맡게 됐다. <내 생애…>를 촬영하며 민규동 감독과 스탭들에게 받았던 업신여김을 한번 만회해보고자 출연을 승낙한 것이다. “두 번째 영화는 며칠 동안 준비를 철저히 했다. 어떤 톤으로 갈 것인지, 메소드 연기에 대한 고민을 깊게 했다”는 그의 말에서 발빠른 현장에 대응하는 긴급 투입 배우로서의 자부심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오지랖 넓구나. 연출이나 잘하셔”라는 사람들의 핍박에도 연출 잘하는 김태용 감독의 오지랖 넓히기는 멈추지 않을 태세다.

민규동 감독의 한마디

“짐 캐리와 양조위의 연기도 연습한 사람”

“내가 매니지먼트를 10년간 해온 배우를 내가 키워주지 않으면 누가 키우나. 그런 고민에 한번 해보라고 했다. 완강히 거부해야 정상적인 건데 순순히 받아들이더라. 사실 김태용은 영화아카데미 시절부터 짐 캐리 연기에 도전했고, 왕가위가 인기있던 시절에는 양조위 담배 피우는 연기 등을 평상시에 나와 함께 열심히 연습했다. 그러면서 아카데미 학생들의 단편에도 출연했는데, 그 모든 것의 결과가 지금처럼 그의 연기생활을 힘들게 만든 거다. 시사회에 갔더니 김태용이 감독인지 모르는 윤진서 매니저가 그러더라. 연기지도에 까다로운 민규동 감독이 왜 저렇게 어설픈 단역을 써서 허점을 보이냐고. (웃음)” -민규동 감독-

직관적 카메오 연기, <피도 눈물도 없이> <괴물>의 임필성

<괴물>

괴물만큼 무겁고 괴물보다 무서운 놈. <괴물>의 진짜 악당은 뚱게바라다. “빚만 6천”을 짊어진 비겁한 과거-혁명분자는 후배를 팔아먹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봉준호 감독에 따르자면 ‘현서의 살인마’이기도 하다. 뚱게바라가 그토록 시간을 잡아먹지 않았더라면 현서도 조금 더 버틸 수 있었을 거라는게 봉 감독의 가설이다. 이토록 미움받는 악당을 극도의 사실주의 메소드 연기로 발현한 배우는 <남극일기>의 임필성 감독. 오래전부터 “뭔가 맡길 만한 역할이 있을 것”이라던 봉준호 감독의 암시가 현실이 된 것이다. 괴물에게 처절하게 잡아먹히는 역이겠거니. 하지만 돌아온 역할은 무려 다섯신에 등장하는 뚱게바라였다. “창피당하지 않으려고 대본도 달달 외우고 간” 임 감독은 연출부가 세팅한 비디오 앞에서 박해일과 함께 리허설 겸 오디션을 거쳤고, 처음엔 불안을 숨기지 못하던 스탭들의 표결에 의해 압도적으로 당첨됐다(라고 스스로 회상한다). 물론 쉬운 역은 아니었다. ‘봉테일’의 난감하도록 세밀한 디렉션과 콘티를 따르기도 만만찮아 첫날부터 열 테이크 이상을 가야 했다. “형. 신경쓰지 말고 편하게 가요.” 박해일의 조언에 힘입은 임 감독. 봉테일은 나 몰라라, 그냥 상황에 따라 직관적으로 연기를 해버렸다. 박해일과 눈이 마주치자 시위를 하는 것처럼 주먹을 들어올리는 것은 임필성 감독의 즉흥연기. “배우는 상황에 충실하도록 놔두고 카메라나 기타 부분이 배우를 따르는 게 맞구나. 감독의 디렉션이 너무 복잡하면 불편할 수도 있겠구나. 감독으로서도 배운 게 많다.” 사실 임필성 감독의 연기 데뷔는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2001)가 먼저다. 마지막 장면에서 돈가방을 차지하는 가방가게 주인 역할이었지만 결말이 바뀌면서 가방을 집어드는 것은 감독님 동생의 몫이 됐다. “류승완 감독이 절대 편집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는데 결국 예고편에만 나왔다.” 그래도 연기력이 모자라서는 결코 아니라는 게 임필성 감독의 항변이다. 항변은 필요치 아니하다. <괴물>의 뚱게바라를 되새겨보건대, 배우 임필성의 파괴력을 알아보지 못한 건 오로지 류승완 감독의 잘못이다.

봉준호 감독의 한마디

“독특한 이미지로 영화를 잘 받쳐줘”

“덩치 크고 화이트칼라의 느낌을 가진 직업배우를 찾던 중 임필성 감독이 떠올랐다. 울부짖으며 광기를 폭발하는 역도 아니어서 비전문배우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역할이기도 하고. 그런데 처음부터 디렉션을 자세히 줬더니 아무래도 직업배우가 아니라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나중에는 편하게 연기하도록 했고, 잘 보면 뒤로 갈수록 연기도 점점 좋아진다. 임필성 본인의 아주 독특한 이미지로 영화를 잘 받쳐줬다고 생각한다. 나도 류승완 감독의 <피도 눈물도 없이>에 카메오로 출연한 경험이 있는데 <플란다스의 개>에서 작업했던 스탭들이 많아서 민망하기도 하고, 더더욱 위축되더라. 정말 힘들었다. (웃음)”

영화인 카메오 최다 출연, <너에게 나를 보낸다> <마파도>의 이정학

<마파도>

특별출연 횟수로는 영화인 중에서 으뜸이다. 이정학 프로듀서 본인 말에 따르면 출연작이 “60여편이 넘는다”. 한국영상자료원의 공식 기록에도 배우 이정학의 출연작은 24편이나 된다. 허풍은 아닌 셈이다. 1997년에는 <비트>를 비롯해 무려 6편의 영화에 연달아 출연했을 정도다. 시작은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였다. 당시 제작부장이었던 그는 장선우 감독의 눈에 띄어 “밥 먹다 말고 정선경에게 옷 몇벌 주고 꼬드기는 의상실 남자로 캐스팅됐다”. “잔챙이 시절이니까 거부할 수가 없었다. 하늘 같은 감독에다 촬영도 유영길 감독님이시고. 두분 다 ‘너랑 딱이다’라고 하는데 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섰는데 카메라가 낯설지 않더라. 나도 몰랐던 끼가 있었던 거 같다. 끝나고 나서 다들 ‘얘, 연기되네’ 그러셨다.” 철사로 대포도 만들어야 하는 제작부 출신이어서 그런가. 이 프로듀서는 험하고 궂은 ‘스턴트’ 연기도 가리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베스트 캐릭터들도 대개 남들이 꺼리는 역할들이다. <비트>에서 정우성에게 얻어터지는 편의점 주인, <엽기적인 그녀>에서 전지현에게 쌍욕을 하는 취객, <마파도>에서 이문식에게 구타당하는 박 사장 등 주로 ‘아낌없이 몸을 던져야 하는’ 역할에 기용됐다. “<본 투 킬>에선 너무 많이 맞아서 출연장면도 얼마 안 되는데 영화사에서 나를 모 영화상 남우조연상 후보로 올리려고까지 한 적도 있다. <가위> 때는 김규리 아버지 역을 했는데 한겨울에 물에 빠져 죽는 장면이라 단역배우들에게 차마 부탁할 수가 없어서 그냥 내가 했다. 며칠 전에 섭외가 들어왔는데 그것도 백윤식 선생님에게 맞는 역할이다.” 거마비 수준의 개런티에도 불구하고 그가 카메라 앞에서 수모를 자처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렇게 촬영현장에서 인연을 만들어놓으면 나중에 내가 직접 만드는 영화에 모실 때 도움이 된다. 스탭이든 배우든. 사실 술자리에서 잠깐 인사 나눈다고 그게 인연이 되나.” 영화는 영화일 뿐 앞으로도 “역할 가리지 않고” 현장에서 뛰겠다는 그는 “앞으로는 제발 계약서 쓰고 출연하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 하나를 마지막에 내놓는다.

김해곤 감독의 한마디

“특별한 표현력에, 쇼맨십까지”

“자기 역할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덤빈다. 주인공을 돋보이게 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기를 부릴 것인가. 표현력이 특별하고 쇼맨십도 있고. 문제는 너무 오버를 해서인데. 감독들이 다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라서 뭐 따지고 보면 문제랄 것도 없고. 가끔 나하고 비교해서 왜 자신은 대접을 못 받을까 푸념을 하는데 사실 나랑은 ‘레베루’가 다르다. 나야 정상적인 계약을 하는 사람이고 정학이는 주면 주는 대로 받아야 하는 입장이고. 질투를 좀 줄였으면 좋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