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내가 모르는 이야기를 들려줘.” 한 아티스트의 신실한 팬이라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씌어진 예술가의 전기를 덮으며 실망을 느낀 적이 더러 있을 것이다. <에곤 실레-세상의 하이페리온>과 <에곤 실레를 회상하며>는 그런 경지에 닿은 애호가들이 반색할 법한 책이다. 1인 출판사 미디어 아르떼의 김기태 편집자는 실레가 성장하고 활동한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직접 방문해 전문가와 관련 인사를 취재하고 자료를 수집해 이 책들을 펴냈다. 특히 편집자는 도판만큼은 세계 수준을 고집했다고 자부한다. 과연 흔히 못 보던 그림도 많고 상태도 훌륭하다. <에곤 실레-세상의 하이페리온>은 두개의 장에 걸쳐 유년기의 원체험을 포함한 화가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정리했다. 3장은 1912년 유아유괴와 포르노그래피 제작 혐의로 수감된 실레가 쓰고 그린 옥중일기와 작품, 편집자의 노이렝박 구치소 방문기로 구성됐다. 감방 실내풍경, 수의를 입은 자화상, 실제 구치소 사진을 볼 수 있다. 4장은 실레의 에로티시즘 작품을 따로 모았다. <에곤 실레를 회상하며>는 1995년 소량 발매됐던 평가 아투어 뢰슬러의 실레에 대한 회상록. 남들보다 앞서 실레를 발견하고 우정을 쌓았던 뢰슬러는 에곤 실레를 가리켜 “노루의 눈을 가진 남자”였으며 그 눈에 어린 두려움은 세상에 상처받을까 하는 근심이 아니라, 타인을 다치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고 추억한다. 화가의 성품, 여행벽, 주제와 기법, 건축가 오토 바그너와의 어긋난 만남 등을 담은 뢰슬러의 회상 속에서 실레는 연약하면서도 예리하다. 그는 타락이 부패보다 낫다고 단언하고, 자신의 도시풍경화가 불쾌하다면 그것은 도시를 처음 세운 카인이 아우를 때려죽인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마침 10월31일은 스물여덟에 요절한 에곤 실레의 기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