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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된 욕망의 그림자, <열차의 이방인>

EBS 10월29일(일) 오후 2시20분

두 남자가 우연히 기차 안에서 만난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한 남자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며 또 다른 남자는 망상적이고 비도덕적이다. 전자는 유명한 테니스 선수인 가이 하이네스이고 후자는 정체가 모호한 부르노다. <열차의 이방인>에서 ‘이방인’은 아마도 부르노일 것이다. 이 이방인은 우연한 만남과 이상한 제안을 시작으로 가이 하이네스의 삶 속으로 침입한다. 평범하고 일면 완전해 보이는 가이의 삶에 부르노라는 얼룩이 끼어들고, 가이가 부르노를 회피할수록 그 얼룩은 가이의 삶에 점점 더 달라붙는다. 그런데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부르노의 존재가, 즉 영화의 ‘이방인’이 가이를 위협하는 외적 존재가 아니라 가이의 내면의 욕망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 영화에서 두 남자의 욕망이 드러나는 방식은 ‘교환살인’이라는 모티브를 통해서이다. 부르노는 교환살인의 필요성에 대해 동기가 밝혀지는 살인은 완전범죄가 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지만, 부르노의 목적 혹은 근거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 이는 영화 속 부르노의 위치와도 연결되는데, 사실 부르노의 캐릭터는 그 자체로는 특별하지 않다. 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너무도 전형적인 히치콕적 캐릭터로서 그 전형성만큼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나 어머니와의 과도한 친밀감이 직접적으로 그려진다. 그런 맥락에서 히치콕의 관심은 부르노보다는 가이의 욕망에 기울어져 있는 듯하다. ‘교환살인’이라는 부르노의 도착적인 욕망과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가이의 죄의식과 억압된 욕망이다. 부르노의 끈질긴 출몰은 가이의 도덕적 위상을 훼손한다. 하지만 히치콕은 부르노의 그림자가 가이를 균열하게 만드는 대신, 오히려 부르노를 파멸로 이끎으로써 가이에게 이성애적인(heterosexual) 안정된 미래를 보장한다. 이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레오나드의 죽음 뒤로 쏜힐과 이브의 행복한 미래를 예견했던 결론을 연상시킨다.

물론 <열차의 이방인>에도 우리의 심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탁월한 순간들이 있다. 이를테면, 부르노의 살인장면이 땅에 떨어진 피해자의 안경 렌즈에 그림자로 반사될 때나 코트를 정신없이 오가는 테니스공의 움직임이 하수구에 떨어진 라이터로 팔을 뻗는 부르노의 안간힘과 교차편집될 때, 혹은 속도감각을 상실하고 빠르게 도는 회전목마 위, 아이들의 미친 듯한 웃음 속에서 부르노와 가이가 하나로 뒤엉킬 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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