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열린 첫 번째 브라질영화제에서 주최쪽은 보란 듯이 최근 제작된 브라질영화들을 주로 선보였다. 누군가는 거기에 옛 시네마 노보 작품이 없다고 한탄했을 터인데, <황폐한 삶>과 <검은 신 하얀 악마>는 그들이 기대했음직한 브라질 뉴웨이브의 대표적 유령들이다. 시네마 노보의 시작을 알린 넬손 페레이라 도스 산토스가 그라실리아노 라모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황폐한 삶>은 1940년 전후의 극심한 가뭄 속에서 살기 위해 길을 떠난 부부와 두 아들 그리고 한 마리 개에 관한 이야기이며, 시네마 노보의 전사 글라우버 로샤의 <검은 신 하얀 악마>는 고용주를 죽인 남자와 부인의 도주와 저항의 연대기다.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은 <황폐한 삶>과 신비주의·서부영화·침묵과 노래·속도와 멈춤이 뒤섞인 <검은 신 하얀 악마>는 그 양식에서 다르고, 삶의 고통이 불만스러워도 어쩌지 못하는 전자의 주인공과 예언자와 산적 그리고 ‘죽음의 안토니오’를 만나며 좀더 적극적으로 삶에 개입하는 후자의 주인공의 노선 또한 다르지만, 두 영화의 영혼은 모두 ‘배고픔의 미학’ 안에서 숨쉰다. 로샤가 말한 ‘배고픔의 미학’이란 분노와 혁명의 표현이다. 가진 걸 다 뺏긴 뒤 삶마저 착취당하고 그럼에도 법과 정부가 보호해주지 않는 억울한 현실은 눈부신 화면 속에서 불타올랐다. 그들은 심지어 고통을 안겨주는 대지와 자연의 신에게도 분노했으니, 빛을 모두 빨아들인 듯 하얗게 번쩍이는 화면은 분노가 이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검은 신 하얀 악마>에서 산적이 죽으며 쏟아낸 외침- ‘권력을 민중에게’- 이 무색하게, 두 영화가 민중의 마음에 다 닿기도 전인 1964년, 군부가 권력을 장악해 이후 20년 이상 군부독재가 이어졌다. 슬프게도 브라질영화는 현실을 이겨내진 못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앙상한 뼈와 찢어진 옷의 시인들이 이후 발걸음을 멈춘 건 아니었다. <황폐한 삶> DVD는 로버트 스탬의 영화 소개(12분)와 영화에 등장하는 개 발레야가 당시 누렸던 유명세를 재구성한 단편 <발레야, 개의 이름>(20분, 감독과 배우가 특별출연했다)을 부록으로 수록했다. <검은 신 하얀 악마> DVD에도 두개의 음성해설과 인터뷰 등 다양한 부록이 있으나 브라질에서 제작된 것이라 따로 자막이 지원되지 않아 아쉽다.